이 은 주

흐린 날

흐린 우산을 쓰고

흐린 케이크 가게를 찾는다

온통 흐린 크림으로

온통 흐린 꽃으로

무지 흐린 향으로 맛을 낸

우울 케이크를 혀로 핥아먹는다

<우>가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울>이 조심조심 스며든다

우울이 우물우물해진다

말랑해진 우울과 팔짱을 낀다

우울의 겨드랑이를 만지며

우울과 입맞춤을 하며

우울과 이마를 맞대며 우울히 웃는다

<우>와 <울> 사이에 서서

달콤달콤 이야기를 나누고

<우>와 <울>을 주머니에 넣고

명랑명랑 다시 거리로 나선다

시인은 우울이라는 심리현상을 거부하거나 그것 때문에 주저앉고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우울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길을 찾는다. 시인은 그 길을 우울과 함께 하고 그 우울을 삶의 한 조건이거나 여건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어울리면서 삶의 변주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비단 우울뿐만 아닐 것이다. 우리들 인생길에 닥치는 어떤 시련도 이러한 자세로 대하고 함께한다면 쉬 극복하게 될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