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문학동네 펴냄·소설집

김애란(37) 작가는 현재 한국 문단에서 주목받는 30대 문인 중 대표 주자다.

200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3학년 때 대학문학상을 받으며 어린 나이에 문단에 나온 김 작가는 2013년 역대 최연소로 이상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2011년 출간한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2010년대 대표작가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많은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2012년 펴낸 세번째 소설집 `비행운`은 새로운 삶을 동경하는 형식으로(飛行雲), 하지만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연쇄적 불운(非幸運)에 발목 잡힌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아 인기를 얻었다.

그의 신작 소설집 `바깥은 여름`(문학동네)은 지난 28일 출간을 앞두고 예약 판매만으로 알라딘 종합 3위까지 올랐다. 역대 최연소 수상으로 화제를 모은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젊은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해 단편 7편이 실린 이번 소설집을 5년 동안 기다려온 독자가 많았다는 방증이다.

`바깥은 여름`에는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젊은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해 단편 7편이 실렸다.

가까이 있던 누군가를 잃거나 어떤 시간을 영영 빼앗기는 등 상실을 맞닥뜨린 인물의 이야기, 친숙한 상대에게서 뜻밖의 표정을 읽고 느끼게 된 당혹스러움, 언어의 영(靈)이 들려주는 생경한 이야기 등이 김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펼쳐진다.

김 작가는 수록작 가운데 한 편을 표제작으로 삼는 통상적인 관행 대신, 이번 소설집에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풍경의 쓸모`)는 문장에서 비롯됐을 그 제목은, `바깥은 여름`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안`(內)을 골똘히 들여다보도록 한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입동`) 시간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뻗어나가는데,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 서버린 누군가의 얼어붙은 내면을 말이다.

그렇지만 소설은 이 외면을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소설집을 닫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편을 잃은 후 `시리(Siri)`에게 `고통에 대해` `인간에 대해` 묻던 `나`가 끝까지 붙들고 있던 질문은, `나를 남겨두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남겨질 사람은 생각하지 않은 채, 계곡에 빠진 제자를 구하기 위해 어떻게 물속에 뛰어들 수 있느냐는 것. 그 아득한 질문에 골몰해 있는 `나`는 제자 `지용`의 누나에게 편지를 받은 후에야 줄곧 외면하려고 했던, 계곡물에 잠기며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었을 지용의 `눈`과 마주한다. 그 마주침 이후 `나`는 이전과 조금 다른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키게 되지 않았을까.

 

▲ 김애란 작가
▲ 김애란 작가

무언가를 잃은 뒤 어찌할 바 모른 채,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어디로 갈 수 있느냐고 묻는 건 `바깥은 여름` 속 인물들이 나눠 가진 질문이기도 하다. 병에 걸린 강아지를 잃고 혼자 남겨진 아이의 모습에서(`노찬성과 에반`), 한 시절을 함께한 연인에게 이별을 고한 여자의 모습에서(`건너편`) 우리가 눈을 떼지 못하는 건, 그 이후 그들이 어디로 가게 될지 쉽사리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시차`는 그간 익숙하게 여겨오던 생각이 깨어질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작품 `가리는 손`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여기서 시차는 잘 안다고 여겼던 인물과 우리 사이에서 생겨난다. 십대 무리와 노인과의 실랑이 끝에 노인이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의 목격자인 `나`의 아들 `재이`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이유로, “아무래도 그런 애들이 울분이 좀 많겠죠”라는 부당한 편견에 둘러싸인다. 그러나 김애란은 그런 편견들 틈에서 때묻지 않은 깨끗한 자리로 아이를 이동시키는 대신, 또다른 편견으로 `어린아이`를, `소수자`를, `타인`을 옭아맸을 가능성에 대해 묻는다. 천진하다고만 생각한 아이에게서 뜻밖의 얼굴을 발견한 순간 터져나온 `나`의 탄식 앞에서, 우리는 “가뿐하게 요약하고 판정”하며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해온 시간들을 떠올리며 아연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니 `바깥은 여름`은, 잘 안다고 생각한 인물에서부터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밀쳐둔 인물에 이르기까지,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명료한 단어가 아닌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고자 한 안간힘의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언젠가 출연한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작가가 `소재를 이야깃거리로 소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소설집 편편에 그 조심스러운 태도가 배어 있다.

김애란은 `바깥은 여름` 말미에 적었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하면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