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br /><br />수필가
▲ 김주영 수필가

차디찬 눈밭에 노란 꽃을 피우는 얼음새꽃을 보고 있으면 해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지에 스며든 햇살이 움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 여린 꽃잎이 언 땅을 뚫고 나와 환하게 피어 대지를 데우며 겨우내 움츠린 봄꽃들을 모두 불러내는 듯하다. 마치 봄의 전령사인 양 얼음새꽃이 피면 햇살 퍼지듯 봄꽃들이 너도나도 앞다투어 피기 시작한다. 해를 닮은 얼음새꽃이 겨울잠을 자는 다른 봄꽃들에게 희망의 편지를 쓴 건 아닐까?

희망이 가득한 사람은 웃는 모습도 햇살을 닮았다.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둡던 마음이 덩달아 환해진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의 첫인상은 밝은 햇살을 보는 듯했다. 며칠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메모 하나를 발견했다. `그녀의 웃음은 봄 햇살이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웃음. 그녀의 웃음에는 노란 꽃빛처럼 밝음이 가득하다. 2004년 이른 봄날에` 그녀의 첫인상을 적어 시집 사이에 꽂아 두었던 것이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구룡포행 시내버스에서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이 그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날은 구룡포에서 문학행사가 있어서 가는 길이었다. 빈 좌석이 많았지만 나는 그녀 곁에 앉았다. 힐끔 곁눈질로 바라본 그녀의 얼굴이 들꽃에 내려앉은 햇살같이 예뻐 보였다. 첫눈에 반했다. 왠지 말을 걸고 싶어 “구룡포 가세요?” 하고 물었다. “예?” 하고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쳐다보더니 “예~”하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버스 안에서 자기의 행선지를 알고 있는 듯 물었으니 놀랬을 것이다.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으니 얼마나 황당하고 푼수 같아 보였을까. 그녀도 왠지 나와 같은 모임에 갈 것만 같아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 또한 문학행사에 가는 길이었다.

문학을 매개로 한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살아오면서 첫 만남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던 걸 감안하면 지금도 우리는 그날의 첫 만남을 하늘이 내린 인연이라고 말한다. 버스가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아주 많은 질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서로 동갑내기인 것을 알게 되었고 외모만큼이나 밝고 친절한 그녀는 “우리 앞으로 친구로 지내자”며 손을 내밀었다. 우연치고는 매우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그녀는 늘 따뜻하다. 대화를 할 때는 항상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며 햇살처럼 환하게 웃어준다. “그래, 그래” 추임새를 넣을 때는 판소리의 고수 같이 흥에 겹다. 그녀는 `생각이 곧 마음이다` 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소한 일에도 근심걱정이 늘어지는 나와 달리 그녀는 늘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는 그녀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처럼 모든 일을 다 맡겨버려서인지 그늘이 없다. 그녀는 지혜롭고 현명하다. 가끔 내가 방향을 잃고 판단이 흐려질 때면 그녀를 만나 차를 한 잔 하게 된다.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묵은 먼지를 털어 내듯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그녀를 만나면 늘 긍정의 에너지를 받는다.

동갑내기이면서 맏언니처럼 다독여주는 그녀의 마음에서는 맑은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 물가에 꽃이 피는 건 자연이나 사람이나 매 한가지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예쁜 웃음꽃을 피우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풀잎과 풀잎을 오가는 따뜻한 햇살 같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늘 먼저 안부를 물어온다. 기분이 좋아지고 힘나게 하는 말과 글. 자격지심이 심했던 내가 우울감을 극복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긍정적인 생각과 해맑은 웃음 덕분이다.

인연을 귀하게 여기는 그녀처럼 나도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가가고 싶다. 내 허물로 인하여 마음을 닫거나 상처받은 이에게 웃는 얼굴로 다가가면 환하게 웃어줄까? 언 땅에 햇살이 내려 움을 틔우고 꽃이 피어나듯 환한 웃음꽃을 피울 수 있다면. 그렇게 초여름 나뭇잎에 내려앉은 햇살처럼 밝고 환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