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호<br /><br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40년 만에 들른 캠퍼스의 감회가 새롭게 느껴졌다.

카이스트가 생기고 입학한 것은 1975년. 당시 카이스트는 병역특례법에 의해 3주간의 훈련으로 특례보충역 편입이라는 정부의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인재 양성 취지와 함께 설립됐다.

130여 명이 그해 입학했는데 필자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입학생들은 1977년 졸업을 하게 되고 40년이 흘렀다.

졸업 40주년 홈커밍이 열린 지난주 토요일 카이스트 서울캠퍼스에는 나이 80이 넘은 은사들과 60대의 초로에 접어든 졸업생들이 모여들었다.

40년 전 젊음을 피우던 그 언덕에는 기숙사, 운동장, 건물들이 그대로였다. 물론 건물들은 증축과 보수로 달라졌지만 그 골격은 그대로였다.

필자는 재학 시 학생회장을 했다는 원죄(?)로 전체행사 사회를 보면서 오랜만에 은사들, 동문들과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예년에 하던 외부강연 등을 빼는 대신 졸업생 각자를 화면에 소개하면서 모두 나와서 자기가 지낸 세월과 과거 재학 시 추억을 소개하도록 해 지난 세월을 함께 하기도 했다. 캠퍼스투어, 카이스트 바로 알기 퀴즈, 장학금 기부, 은사께 선물 등 다채로운 행사도 가졌다.

카이스트 3기에는 최양희 미래부장관, 권오현 삼성 부회장,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 이호수 SK텔레콤 사장 등 꽤 유명 인사들이 많다. 당시 은사들 중에도 정근모 전 과기처 장관, 배순훈 전 정통부 장관, 박찬모 전 포스텍 총장, 김영걸 전 포스텍 대학원장 등 유명 인사들이 수두룩하다. 이날 행사는 `추억속의 KAIST와 오늘`이라는 주제의 동영상 시청을 시작으로 총동문회장의 환영인사와 총장의 축사, 각 학과별 은사 및 동문소개, 장학기금 전달식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날 장학금 전달식에서는 1977년 졸업 이후 40년 간 돈을 모아 조성한 `후배사랑 노랑봉투 장학금` 1억원을 후배들을 위해 써달라며 학교 측에 전달하는 감동적인 행사도 있었다.

1971년에 KAIS(한국과학원)이라는 이름의 대학원으로 서울 홍릉에 처음 설립되어, 1981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와 통합을 거쳐 한국과학기술원(KAIST)으로 설립되었고, 1989년 한국과학기술대학(KIT)과 통합, 대덕 캠퍼스로 이전하고 서울 캠퍼스에는 경영대학을 만들어 카이스트는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명칭이 과기원 또는 KAIST로 통일되어 있지 않았으나 2008년에 대외 공식 명칭을 KAIST로 통일했고 “산업발전에 필요한 과학기술분야에 관해 깊이 있는 이론과 실제적 응용력을 갖춘 고급과학기술인재를 양성하고 국가 정책적으로 수행하는 중·장기 연구개발과 국가과학기술 저력 배양을 위한 기초·응용연구를 하며, 다른 연구기관이나 산업계 등에 대한 연구지원을 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원을 설립함”으로 명기한 한국과학기술원법에 따라 법인으로 설립돼 지금까지 4만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많은 이공계 학자, 벤처기업가, 기술 관료들을 배출했다.

이 지역의 포스텍은 카이스트와 함께 `한국 이공계교육과 연구`라는 두 개의 축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포스텍은 항상 “한국 최초의 연구중심 이공계대학”이란 구호를 앞세운다. 이 근거는 무엇일까?

답은 여기에 있다. 포스텍은 1986년 설립되었고, 카이스트는 1971년 설립되었으나 대학원만 있었고 학부가 만들어져 대학, 대학원 모두 갖춘 대학이 된 건 1989년이었다.

포스텍, 카이스트는 소중한 한국의 지적 자산이다. 설립 50년 이하 대학에서 세계 5위권 안에 들고 1위를 하기도 했다. 세계 100위권 내에는 항상 들어가고 있다. 이제 반세기 역사를 갖게 되는 두 대학이 이 나라 과학기술을 선도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대학으로 계속 발전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