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재현<br /><br />편집국장
▲ 임재현 편집국장

`민주주의로서는 쓰레기통인 한국에서 도저히 꽃필 수 없다`던 그 장미의 계절 5월을 지나고 있다. 지금 한국은 65년 전 아시아의 신생 독립국가에 불손한 저주를 던진 어느 영국인 기자를 마치 비웃어 주는 것처럼 드라마틱한 나날들이다. 경험하지 못했던 5월 장미대선에서 진보 진영의 승리가 이런 절묘한 케미를 낳을 줄 어찌 상상했겠는가? 인수위원회도, 거창한 국회의사당 앞마당도 아니었지만 5·18의 망월동, 아니 빛고을 광주는 문재인 대통령을 위한 드넓은 취임식장이었다. 그뿐인가. 로버트 레드포드 스타일의 대통령이 대인배다운데다 소탈한 품성까지 겸비했으니 논어가 가르친 `정자정야`(政者正也)의 모범을 보고 있는 듯하다. 염려스러운 면도 있지만 그의 참모들이 대선 노정의 고단함을 풀 겨를도 없이 언제 저런 인재들을 발탁했는지 경탄케 하는 인사들도 발표되고 있다. 이전 정권의 인수위가 2개월여의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어제 역사적 법정에 섰던 대통령의 수첩에 의존했다가 망신만 당하던 시절과도 대비된다.

이제 2주째를 넘긴 새정부의 대국민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일정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디테일한 보도가 나가서 여론이 열광하면 뒤이어 인사가 발표된다. 여기에는 물론 조국, 김상조, 장하성 등 보수가 닭살 반응부터 내고 보는 소위 문제적 인사들도 포함됐다. 대통령의 몇호 업무지시라는 이름의 조치들이 그 전율할 정치적 의도에 비해 진도가 낮게 감지되는 건 새 정부의 참모진이 그만큼 노련하고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혼돈과 갈등의 긴 겨울 터널을 거쳐온 국민의 입장에서 그들이 청년군주 세종을 보필해 조선의 융성기를 이뤄낸 집현전 학자들처럼 종횡무진, 밤낮 없이 활약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어제 4대강 사업을 사실 상 적폐로 규정한 대통령의 업무지시에서는 새 정부가 일처리의 요체인 우선순위를 오판하고 있다는 허점이 보였다. 부패와 정책 오류에 대한 확신이 있고 죄가 그리 크다면 정치보복의 비난을 받더라도 밝혀내야 한다. 하지만 1년간의 조사를 거쳐 필요하다면 보를 철거하겠다는 대목에서는 접근이 벌써 한참 어긋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1년으로 치수사업의 효과와 문제, 그에 부가된 수질의 변화를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는가. 정치적 고려에서 비롯돼 구성된 조사단의 객관성은 어떻게 담보하는가. 이를 거쳐 천문학적 사업비를 들여 준공한지 10년도 안 된 강 속의 구조물을 다시 국가재정으로 헐어낼 수 있다는 발상은 과연 어떻게 입안됐는가. 북핵사태와 동북아 정세, 주력산업이 도태될 위기 속에서 국정 공백을 만회해야 할 이 골든타임에 정쟁과 재정을 거덜낼 카드부터 꺼내 들어야 한단 말인가.

결국 새 정부는 정치의 과잉이라는 출범 전후의 우려에 대해 다시 자기점검의 칼날을 가슴에 얹어봐야 한다. 우리의 지난 7개월은 이미 국민 모두가 촛불과 태극기라는 정치 행위에 몰입한 시기였다. 대의민주주의의 한 도구인 대선은 그에 비하면 이벤트에 불과했다. 세월호에 우리 아이들을 수장시킨 낡은 대한민국의 적폐가 아무리 밉더라도, 김기춘의 장막 뒤에서 블랙리스트나 만지작 거린 박근혜가 아무리 밉더라도 이젠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386의 참모들은 1987년 6월 항쟁의 저 뜨거운 도로 위에서 최루탄, 사과탄 세례를 맞으며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면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네크라소프의 싯구를 이념의 표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제는 분노를 승화시켜 좌우가 공존해야 하는 이 땅에서 좋은 나라를 다시 재건해야 하는 역사적 임무를 맡고 있다. 그들이 10년만에 다시 청와대에 입성해서 `홍위병` 비난을 또 들을 수는 없다. 모택동의 `조반유리`(造反有理, 모든 저항에는 이유가 있다)는 역사의 박제가 돼야 한다. 이제 필요한 미덕은 `항산항심`(恒産恒心,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이다. 현실 안주가 아니라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