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탄핵정국과 대통령선거를 지나면서 사실상 유명무실의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다. 김영란법 시행 6개월을 맞아 국민권익위원회가 공공기관 2만 3천850여 곳을 대상으로 법운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 그동안 접수된 위반 신고 건수는 총 2천311건이다. 이 가운데 수사 의뢰나 과태료 부과 처분이 내려진 사건은 57건(2.5%)에 불과했다.

더욱이 전체 신고의 76.3%는 학교 등에서 외부 강연을 한 사례다. 사실상 법 위반 신고도 실제 처벌도 드물다는 의미다. 전국 경찰에 접수된 신고는 375건(3월 기준)이며, 이 가운데 수사 대상인 서면신고는 24건에 불과하다. 대구지방경찰청의 경우 지난 4월 말까지 김영란법 관련 신고가 단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이처럼 신고 접수가 저조한 것은 까다로운 신고 절차와 적발과 처벌이 어려운 현실이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해 법 시행 초기 당시 정부의 서슬퍼런 처벌 의지에 바싹 긴장했던 공직자, 기업인 등 이해관계자들의 법 준수 의지도 느슨해진지 오래다. 지자체 등 관공서 주변 고급식당들이 지난해 후반기 극도의 영업피해를 호소했지만 최근 매출이 과거 수준 가까이 회복하고 있는 추세는 이 같은 실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궁하면 통한다`고 김영란법을 피해 가려는 편법도 동원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과거 골프 접대의 경우 그린피와 식사비용 등 일체를 접대하는 측에서 부담했지만 이제는 접대할 사람에게 미리 현금을 주고 각자 계산을 하도록 한단다. 또 내기 골프를 통해 각자 골프 비용을 충분히 낼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동원된다.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할 때에도 법정 한도인 3만원만 카드로 계산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식당주인에게 주는 방법을 쓰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적용대상인 400만 명은 경조사마저 쉬쉬해야 하고, 1년 365일 가운데 단 하루인 스승의 날은 존경하는 스승에게 종이 카네이션조차 달아줄 수 없는 등 살풍경만 무성하다는 비판도 있다. 대선에 출마했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텐·텐·파이브(식사 10만 원·선물 10만 원·경조사비 5만 원)` 주장이 상당수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끌어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농어업인들이 받고 있는 타격을 줄이기 위해 명절에는 농축수산물 및 가공품의 품목을 선물금액 제한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내용으로 제출된 강석호 자유한국당 의원의 개정안을 포함, 국회에 계류 중인 11건의 김영란법 개정안도 서둘러 집중 심의할 필요가 있다. 하루빨리 보완책을 찾아 실효성을 높이는 한편, 위반사례를 제대로 밝혀낼 방안도 찾아내는 등 본래의 입법취지를 살려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