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권 없는 친구들 부러워해요”
포항시 거주 배은해씨
2003년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 와
8년만에 국적 취득
5월 9일 두번째 참여

▲ 지난 25일 포항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합창 수업을 마친 배은해(왼쪽부터), 엘사 , 크리스틴 씨가 국기가 그려진 세계지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정기자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14일 앞둔 25일 화요일 오전 11시. 포항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입구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머리 모양부터 생김새, 옷차림이 제각각인 여성 30여 명이 센터 강의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포항에 정착한 결혼 이주여성으로 구성된 `다소리세오녀합창단`이다.

이들에게는 오는 5월 9일 평소와는 다른 화요일이 기다리고 있다. 이날 결혼 이주여성은 유권자(有權者)와 비유권자로 나뉜다. 선거권이 있는 여성만이 투표장에 갈 수 있다.

다문화가정 인구 100만 시대라지만 국적취득 문턱을 넘지 못해 지역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결혼 이주여성들이 많다. 포항시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34개국에서 온 결혼 이주여성 1천797명이 시민들과 동고동락 중이다. 이 가운데 다음 달 대선에서 표를 던질 수 있는 자격은 불과 39%(723명)에게만 있다.

때문에 투표권이 없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배은해 씨(58)는 선망의 대상이다. 지난 2003년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그는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하는 데 8년이 걸렸다. 제18대 대선 때는 한국인으로서 첫 투표도 해봤다.

배씨는 “어렵게 얻은 한 표를 던져 뽑았던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많이 속상했다”며 “이번엔 남편과 함께 TV토론회도 챙겨보고 있지만 다문화가정을 위한 공약을 찾아보기 어려워 아쉽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국에 온 지 20년이 훌쩍 넘은 엘사 씨(52·필리핀)는 배 씨가 마냥 부럽기만 하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시부모를 모시며 자녀도 셋이나 낳았지만, 그는 외국인이다. 엘사 씨는 “대학생인 큰아들과 주로 한국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며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기대되지만 정작 투표권이 없어 답답하다.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제약이 많다. 초등학생 딸아이는 여전히 왜 엄마만 한국인이 아닌지 묻곤 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이주여성 크리스틴 씨(46)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생활 16년차로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前) 대통령 이름을 꿰찰 정도로 국내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그는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가 아니다.

수십 년간 한국에 살면서 왜 아직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을까. 이들은 하나같이 “3천만원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결혼 이주여성이 한국 국적을 신청하려면 거주기간과 혼인지속 여부, 자녀 유무 등과 함께 3천만원 이상의 예금 잔고나 전세계약서 등의 재정증명이 필요하다.

그래도 크리스틴 씨는 대통령 후보에게 할 말이 있다. “이주여성으로서의 삶도 물론 힘들지만, 주위에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며 “누구나 선거에 참여할 수 없는 것처럼 아무나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좋은 대통령이 당선돼 다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우리가 합창을 배우는 이유와 같다”고 덧붙였다.

/김민정기자 hy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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