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승 도

나팔꽃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왠지 꽃속으로 빨려들 것만 같다 아니,

빨려들어가고 싶다

붉고 부드러운 원형의 문을 지나 하이얀 빛으로 자리 잡은

수술과 암술의 세상에 꽃가루 한 점이 되어 자리를 잡고 싶다

가던 발 멈추고 나팔꽃을 가만히 바라다보고 있으면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산들산들 나팔꽃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그러면 불현 듯 지금의 나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꽃 속으로

쑤욱 빨려들어가 그만 나팔꽃이 되고만 싶다

나팔꽃에 매혹되어 꽃과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꽃가루 한 점이 되고 싶은 소멸의 충동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멸과 함께 또 다른 공존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높은 시안을 발견할 수 있다. 사소함과 통하는 가벼움과 미미함이라 할지라도 소통을 통한 공존을 염원하는 깊은 시심을 찾을 수 있는 시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