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길 녀

칠월 장맛비, 시퍼런 초록 골짜기를

흘러나오는 오래된 옛집

나보다 먼저 죽어간 이들의 저녁을 위하여

슬며시 문고리를 열어둔다

저물녘 강둑에 스며든 적막감이 한기로

다가와 스멀스멀

경전 속 숨은 비밀이 되어

방안 가득 똬리를 튼다

주술에 걸린 듯 박태기나무 팝콘 같은 꽃잎들

후두둑 떨어져 어둠의 두터운 안부를

빗길 위에 떠내려 보낸다

검은 물기둥 궁전이 있는 사북, 뭉텅뭉텅

킬링필드의 목 잘린 해골처럼 쌓여서

산맥을 이루는 폐석탄 잔해들

굳은 능선의 부르튼 틈새마다엔

붉디붉은 물결의 시간이 깊은 주름으로

흐르다, 꽉 다문 막장 문 입구에서

녹슨 눈물의 뿌리로 환생하기도 한다

막장으로 가는 마지막 길

숨이 긴 여름햇살, 제 몸 서랍 속 비늘

모두 털어내어

바다로 가는 길을 열고 있다

적막감과 차가움이 낡은 폐광에 고여 있는 사북은 유년의 힘겨웠던 시간과 함께 묵은 시간의 찌꺼기들이 녹슬고 있는 곳이라는 시인의 인식은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다. 붉디붉은 물결의 시간이 깊은 주름으로 새겨진 추억의 시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바다로 가는 길을 마련하고 있다. 그것은 회생과 치유의 바다로 가는 길이다.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노래하는 시가 아닐 수 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