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길수 수필가
▲ 강길수 수필가

온 거리가 다르다. 누군가 손을 본 모양이다. 삼월 초열흘 출근길. 대로와 골목길을 한참 걸어가도 역시 전과 다르다. 어떤 손길이 이랬을까.

잠시 후, `오, 그랬구나`하고 혼잣말이 나왔다. 이틀 전 아침 출근길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광장 횡단보도를 걷는데, 몸이 날아갈 듯 강한 소소리바람이 불었다. 모자를 손으로 잡으며, `웬 꽃샘바람이 폭풍 같지?`하고 투덜거렸다. 큰 건물 모서리를 지날 때는 휴지, 비닐봉지 등 쓰레기와 먼지가 함께 날아오르며 눈 속에 티가 들어가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에도 조금 약해진 꽃샘바람이 여전히 불었다.

삼일 째 되는 오늘 아침. 차도는 물론 인도, 골목길, 가로수 아래 잔디밭도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기분이 좋다. 사람이 이렇게 먼지도 없이 청소하려면 많은 일꾼이 붙어도 힘들게다. 웬일인지 담배 피우며 걸어가는 이도 없다. 담배냄새가 싫어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 가거나 돌아가곤 했었다. 덕분에 상쾌한 출근길이다.

그랬다. 먼지하나 없이 거리를 청소한 손길은 센 꽃샘바람이었다. 사람들이 무시로 거리를 더럽히니, 봄맞이에 거슬려 하늘이 직접 나섰나보다. 폭풍 같은 소소리바람을 내 뿜는 하늘빗자루를 보내 온 거리를 말끔히 쓸어갔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꽃샘바람이 봄을 시샘하여 분다고 한다. 시샘은 상대를 부러워 시기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니 꽃샘바람이 바로 봄맞이바람이 된다. 하늘은 시샘, 거짓, 꾀 같은 것들은 외면하지만 스스로 깨끗이 하는 힘은 행사한다.

출퇴근길에 두 주택가 공원 곁을 걸어서 오간다. 한 공원은 언제나 깨끗하다. 다른 한 공원은 날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들이 버린 꽁초, 휴지조각, 비닐봉지, 커피잔 같은 쓰레기가 이곳저곳에 버려져 볼 때마다 지저분하다. 처음에는 한 곳은 사람들이 거의 안 오고, 다른 한 곳은 많이 오기에 그런 줄로 생각했다. 여러 날이 가고 계절이 바뀌면서 진실이 눈앞에 나타났다.

깨끗한 공원에는 한 노부부, 특히 할아버지가 꾸준히 공원을 돌보고 계셨다. 말없이 쓰레기를 치우고, 잡초도 뽑아내셨다. 거의 매일, 자기 집이다시피 돌보니 실상 하루에 할 일의 양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공원에 오는 이들은 그분들 덕분에 쾌적한 공간에서 몸과 마음을 쉬고, 새 힘을 얻어간다 싶었다. 한두 사람의 묵묵한 봉사가 많은 이들을 기쁘고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이 갈수록 크게 다가왔다.

반면, 지저분한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쉬거나 놀고 또, 운동을 하면서도 공원에는 관심 없어 보였다. 아이러니하게, 봄부터 가을까지 지자체가 운영하는 청소팀이 아침에 모이는 장소이기도하다. 모임에서 그날 청소구역을 의논, 정하고 출발하는 곳이다. 그런데도 꽁초와 휴지조각 같은 것들이 이곳저곳 널브려져 있다. 큰 것만 대충 줍기 때문이다. 이 공원을 지날 때는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언짢았다.

하루에 두 번씩 두 공원을 지나는 나는 그때마다 행, 불행 사이를 오가는 기분이다. 아침에는 기쁨 뒤에 슬픔, 저녁에는 슬픔 뒤에 기쁨의 순서다. 오늘 퇴근길에, 두 공원이 요즈음 우리 사회를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며 공원을 쳐다보는 길은 침묵하는 다수이고, 깨끗한 공원은 사회 저변에서 노부부처럼 말없이 봉사하는 사람들이며, 지저분한 공원은 이성(理性)과 결별하고 진실을 외면한 감성의 선동과 탈판에 최면 당해버린 지도층들이다 싶었다.

그러자, 침묵하는 다수가 이젠 두 공원을 강 건너 불 보듯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마음을 내려쳤다. 지저분한 공원이 깨끗한 공원으로 되도록, 침묵하는 다수가 나서야 하지 않느냐고 연이어 물어 왔다. 내 마음은 저절로 답하였다.

`침묵하는 다수가 하늘빗자루가 되어 삿된 것들을 쓸어내고, 선거 때 노부부 같은 일꾼들을 꼭 뽑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