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종 암

어둡고 긴 복도를 지나온 봄나무

가지가지로 연초록 물결이 달려온다

봄볕의 구걸이다

사지 멀쩡한 봄볕이

내게 걸어와서 어서 안아달라고

구걸하는 것이다

낭자한 초록의 물결

그냥 거기에 잠겨 흘러가고 싶다

그러나 초록의 정년(停年)은

사월, 여기까지다

곧 초록비가 내릴 것이다

초록에도 정년이 있다는 시인의 설정이 재밌다. 엄동을 견딘 땅에는 부활의 촉들인 새순 새싹들로 연두세상이 된다. 참으로 아름다운 환희의 천지가 아닐 수 없다. 연두는 서서히 초록으로 바뀌고 초록 물결이 된다. 시인의 말처럼 사월이면 초록비가 내리고 진한 신록의 옷으로 바꿔 입기 시작하는 것이다. 저만치 오고 있는 고운 생명의 봄을 기다려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