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 순

시린 바람 앞에 서다

한 닢 잎 새

흔들리는 고요

시간의 무늬 새기며

비어지며 아득해지는 것을

갈 볕

떠나야 할 것들을 어루만지다

추억처럼 쓸려오는

떨궈진 이파리들 몰려드는 저녁

머물듯 스치는 시간의 플랫폼

뭉툭해진 날개 짓

붉은 노을 삼키며 떠나가는데

바람 이는 중년의 언덕

서걱이는 심장 하늘 모퉁이에 새기며

흔들리는 세월

억새길 따라 나선다

차가운 바람 속 화석으로 쌓여진 내청춘의 시간들

하 고운 무늬들

아직 사랑해야할 시간은 남은 걸까!

늦은 가을 상강(霜降) 무렵 시인은 쏜살같이 가버리는 시간을, 그렇게 스러져간 아름다운 청춘의 시간들을 돌아보고 있다. 머물 듯 스치는 플랫폼에서 수없이 떠나보내고 떠나와 버린 시간들이었다. 점점 차가워져 오는 바람 앞에서 속절없이 화석으로 변해가는 시린 시간의 떼를 바라보며 아쉬워하고 있는 시인을 본다, 어쩌랴. 붙잡아 둘 수 없는 것들, 노을 따라 바람 따라 억새길 따라 허망하게 가버리는 것들. 그게 인생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