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인 수

해 넘긴 달력을 떼자 파스 붙인 흔적 같다

네모반듯하니, 방금 대패질한

송판냄새처럼 깨끗하다

새까만 날짜들이 딱정벌레처럼 기어나가

땅거미처럼 먹물처럼 번진 것인디

사방 벽이 거짓말같이 더럽다

그러니 아쉽다. 하루가, 일주일이, 한달이

헐어놓기만 하면 금세

쌀 떨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또 한해가 갔다

공백만 뚜렷하다

이 하얗게 바닥난 데가 결국

무슨 문이거나 뚜껑일까

여길 열고 나가? 쾅, 닫고 드러눕는 거?

올해도 역시 한국투자증권

새 달력을 걸어 쓰윽 덮어버리는 것이다

벽에 붙어있는 해 넘긴 달력을 떼어내며 시인은 섬뜩하게 다가오는 세월을 느낀다.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휙휙 지나가고 후다닥 한해가 가버린 흔적들에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우리를 데리고 가는 시간이라는 마차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데리고 가서 무엇을 어쩌자는 것인가. 쏜살같이 지나가는 세월을 느끼며 새 달력을 내 걸며 다시 가만히 그 마차에 몸을 싣는 시인을 본다. 아니 우리네 인생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