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낙 추

홑이불 같은 구름 헤치고

정월 대보름달

둥실 떠올랐다

연을 시집보내는 애들도 없고

지신(地神) 밟고 논둑 고사 지내는 어른도 없다

쥐불놀이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부럼을 깨든 단단한 이빨들은

어디서 쓰디쓴 삶을 깨물고 있는지

귀 밝은 술 나 혼자 마신다

갈 테면 다 가고

뺏을 테면 다 뺏어 봐라

그런다고 내가 물러설 줄 아느냐

혼자라도 오곡밥 아홉 그릇 먹고

나무 아홉 짐 할 테다

하늘은 맑은데

흐린 눈으로 바라보는 보름달

물먹었다

올해도 물풍년은 틀림없겠다

한 해의 풍성한 결실 후에 다가오는 대보름은 그야말로 연중 가장 큰 보름달 만큼이나 거득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보름달이 떴는데도 시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흥성스러운 모습들이 아니다. 각자의 쓰디쓴 삶을 살아가느라 삭막하고 각박하기 짝이 없는 명절이다. 그러나 시인은 혼자라도 오곡밥 아홉 그릇 먹고 나무 아홉 짐 하겠다는 반어적 표현으로 그런 불구의 세태를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