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카톡방이 검열된다는 소식에 분개(憤慨)해 텔레그램으로 망명(亡命)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고 카톡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의 `단톡방`은 여전히 성업 (盛業) 중이다. 그럼에도 텔레그램 망명을 선택한 데에는 까닭이 있다. 누군가가 나의 동의 없이 나의 언어와 사유와 관계를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다. 남의 대화를 훔쳐보는 짓은 여자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한 관음증환자와 다를 바 없다.

나만의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인간관계가 매우 단출한 사람들도 텔레그램으로 망명해온다. 그럴 땐 묻고 싶어진다. “무엇 때문에 망명하셨나요?” 그들의 대답이나 생각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성싶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은밀하고 음험하게 엿보고 있다는 끔찍한 생각 때문에 정신적 망명도생(亡命圖生)을 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부(權府)와 정보당국은 무엇 때문에 국민들의 사생활에 이토록 역겨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固有)한 영역을 가지고 싶어 한다. 나만의 비밀과 추억과 사연과 관계를 오롯이 향수(享受)하고 싶은 것이 본성이다. 거기에는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개입할 수 없다. 아내든 자식이든 애인이든 형제든 친구든 마찬가지다. 아무리 작고 하잘것없어 보이는 비밀이라도 소중히 간직하려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데 무슨 권한이 있어서 하이에나마냥 남의 비밀에 더러운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는단 말인가?!

권부와 하수들이 킁킁대며 냄새를 맡고 수신호(手信號)를 하고 음험한 눈길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아무 거리낄 것 없는 사람들도 견딜 수 없는 역겨움과 환멸과 구역질이 솟구칠 밖에 없다. 현 정권이 국민들의 일상을 낱낱이 감시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것도 지속적이며 노골적이고 파렴치(破廉恥)한 방식으로 말이다. 국민들을 감시하는 것은 범죄행위다. 헌법에 명시된 `통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야만적인 짓이다.

헌법 제18조는 국민이 `통신-전화-전신 등으로 의사나 정보를 전달 또는 교환할 때 그 내용이 공권력에 의해 침해당하지 않는 자유`를 명시(明示)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보당국이 끈질기게 국민들의 전화를 도·감청하고, 카톡을 뒤지고, 밴드와 페이스북까지 검열하려 드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어떤 법적인 권리가 있어서 헌법마저 유린하려 드는 것인가?! 허다한 국민을 텔레그램으로 망명시킨 것은 결국 권부와 정권과 그 졸개 하수인들 짓이다.

국민들을 이중인격자로 전락시키는 권력과 정부는 불의(不義)하다. 위대한 이중인격자 톨스토이가 아내를 위한 일기와 자신의 내면을 토로(吐露)한 별개의 일기를 써야 했던 것은 100년도 더된 일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세계최강 정보통신을 자랑한다는 나라의 백성으로 살면서 권부와 정보당국의 감시를 받는다는 것은 우울을 넘어 짜증과 분노가 치미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자신이 없으면 권력을 내놓고 산뜻하고 우아하게 내려오라!

추하고 역겹게 남의 뒤나 캐면서 음습(陰濕)한 곳에서 뒷조사나 하고 국민세금을 봉급으로 축내는 짓은 그만두어야 한다. 친구들과 유쾌한 농담과 질펀한 음담(淫談)과 뒷담화로 저녁한때를 보내려는 장삼이사(張三李四) 백성들을 의심하는 권력이 어디 쓸모가 있겠는가! 정당하고 자신만만하며 제대로 작동하는 권력과 권부와 정부와 정보기관은 그런 참람(僭濫)한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그토록 많은 의심과 의혹을 흉중에 담고 무슨 일을 하겠는가?!

얼마 전 텔레그램으로 망명한 수줍고 소심한 동료를 보면서 느낀 소회(所懷)는 이런 것이었다. 어째서 그마저 망명해야 했는가?! 무엇이었을까, 그로 하여금 망명하도록 한 것은?! 과연 이것이 나라인가?! 광장과 거리와 지하철에서 활짝 피어나는 참여 민주주의 열기를 확인하면서 더럽고 역겨운 감시와 우울한 망명을 생각한다. 이제 그만들 했으면 한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