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철화 편집부국장
▲ 정철화 편집부국장

대한민국이 큰 혼란에 빠져 있다. 하찮은 강남 아줌마가 나라를 거덜냈다. 일국의 대통령이 장막 뒤에 숨어있는 비선실세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국민의 상처 난 자존심을 어찌할 것인가. 차리리 “모두 내가 시켜서 한 일”이라고 밝히고 당당하게 물러나는 것이 분노한 국민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을 듯싶다.

어쩌다 나라 꼴을 이 지경까지 망쳐놓았는지 그저 한숨만 나온다. 영화 `간신`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폭군 연산군이 죽음을 앞둔 희대의 간신 임숭재에게 일갈(一喝)한다. “왕이 잘못을 행하려 할 때, 신하는 목숨을 걸고 간언해야 하는가. 아니면 제 목숨을 애석히 여겨 순종해야 하는가. 군주의 뜻에 영합하여 그 뒤의 해로움을 생각지도 않으니 너는 간신이고, 또한 아첨으로 주군의 눈을 가려 나라를 말아먹으니 너는 망국신이다.”

조선 제10대 왕 연산군은 자신의 악행을 멈출 것을 직언하는 환관 김처선의 다리와 혀를 직접 잘라 죽였고 조정의 관리들에게 함부로 직언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신언패(愼彦牌)`를 목에 걸게 했다. 그것도 모자라 사간원마저 폐지했으니 가히 불통의 대가였다. 불통의 왕 옆에 충신은 없고 간신배들만 우글거리는 것은 당연지사. 연산군은 끝내 신하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났다.

박근혜 대통령도 연산군의 불통에 못지않다. 직언을 하는 측근들을 내쳤고 잘못을 지적하는 관리들에게는 레이저 눈빛으로 말문을 막았다. 최순실을 위시한 비선실세와 문고리 3인방, 친박의원 등 대통령의 용비어천가만 부르는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니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대통령의 무능과 그를 둘러싼 사악한 무리들의 국정농단이라는 태풍을 만나 침몰직전의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 선박 항해술 가운데 황천((荒天)항법이란 것이 있다. 폭풍과 태풍 등의 악천후 속에서 항해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황천항해술은 선수(船首:배의 앞머리)가 파도를 비스듬하게 받을 수 있도록 조타기(배의 핸들)를 유지해야 한다. 이때 필수적인 조건이 엔진의 작동이 절대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이다.

유능한 선장은 태풍 속으로 배를 몰고 들어가지 않을뿐더러 설령 태풍에 갇히더라도 노련하게 빠져나온다. 대한민국은 무능하고 미숙한 선장과 항해사들이 태풍 속으로 배를 몰아넣었고 태풍을 헤쳐나올 수 있는 항해기술마저 없다. 이대로 두면 십중팔구 침몰하고 만다.

태풍에 갇힌 배는 일단 태풍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최우선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은 태풍을 만나 침몰하기 일보직전에 있는 배 위에서 서로 잘잘못을 놓고 싸우고 있는 모양새이다. 항해기술도 없으면서 계속 배를 운전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쪽이나 무능한 선장을 자리에서 무조건 끌어내리겠다고 우기는 쪽이나 모두 현명하지 못하다. 능력있는 항해사를 뽑아 태풍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항해를 맡기는 것이 우선이다.

더욱이 모두 항해 능력을 놓고 다투고 있지만, 정작 엔진을 멈추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아무리 유능한 선장이라도 엔진이 꺼지면 백약이 무효이다. 엔진이 꺼진 배는 설사 태풍에서 빠져나오더라도 망망대해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고 다른 선박에 의해 구조가 되지 않는 한 자력으로 항구까지 돌아올 수 없다.

서로 싸우더라도 대한민국호의 엔진과 다름 없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멈추지 않도록 하는 일만큼은 내 편, 네 편 없이 합심해야 한다. 국정중단 사태가 길어져 장기 표류하면 장래에 더 큰 국가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미 APEC 정상회담 불참 등 곳곳에서 국정 동력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어 우려스럽다. 태풍 속에 갇힌 배는 엔진이 꺼지는 순간 침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