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삶이 덧없이 흐르는 듯해서 일기도 가끔 써보지만 그때뿐이요, 곧 쉽게 쓰고 흘려보내는 나날이다.

어느 것 하나에 집중만 할 수 있다면, 자기의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하루 24시간. 그러나 나이 들수록 시간은 빠르게 흐르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 하듯, 하루 종일 뭐 했는지 모르는 시간이 이어진다.

어제? 아침 일찍 두통을 안고 학교로 향했다. 집을 나와 차를 둔 곳이라고 생각한 쪽으로 가보았으나 없다. 어딨지? 하다가 지하 3층 주차장이 아니라 지상이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운전석에 안고 보니, 커피를 또 뽑아놓고 맨손으로, 머리맡에 한강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를 3장까지 읽다 만 것도 그냥 두고 나왔다.

하는 수 없이 다 포기하고 학교로 향하다 동생에게 집안 일과 관련 상의할 것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마침 차는 국회의사당 앞을 지나치는 중, 일찍 출근하는 동생 얼굴을 잠깐 본다.

차가 밀려선지 학교까지 근 한 시간. 요즘에는 가자마자 컴퓨터 인터넷부터 열고 서류 처리부터 해야 한다. 며칠 전부터 도쿄에 가 있는 학생과 미국에서 연구년으로 와 있는 영문학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보낸다 하고는 그대로다. 급한 결재부터 하고, 오늘은 기어코 한강론을 진척을 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그 문젠 어떻게 되었더라? 하고 생각이 옆으로 흐른다. 한 달을 두고 골치 아프게 만드는 일이 있다.

전화 한 통 하고 옆방에 계신 선생님과 만나 이것저것 상의하고 나자 바로 열한 시면 회의다. 무슨 자료 목록을 조사하고 관련된 책도 내고 학술대회도 만드는 일인데, 불과 몇 달 사이에 이 세 가지를 다 해치워야 한다.

회의는 꼬박 한 시간 걸렸다. 혼자 같으면 그냥 연구실로 돌아가 책상 앞에 앉겠는데, 회의를 함께 한 학생이 있다.`하는 수 없이` 식당으로 간다.

이제 네 시면 수업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천 개의 고원`이라는 책이 있는데, 여기서 `동물 되기`에 관한 장을 확인해야 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나무 되기`, 즉 `식물 되기`인데, 이것을 분석해 보이려면 들뢰즈와 가타리의 그 책이 필요하다.

갈 길이 멀다. 시간은 없다. 내 생각에,`채식주의자`는 `나무 되기`만 아니라 `새 되기`도 숨어 있고, 이는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한 적 있는 작가의 이력과 관련되어 있다. `새 되기`는 이상 소설 `날개`의 변신 모티프이고 이에 관해서 논의한 것도 있다. 많은 것을 짜맞추어야 하건만 시간은 바쁘게 흐르고 수업 시간이 닥친다. 마침 이상의 `날개`를 말해야 하는 시간이다. 수업이 끝나고나자 오후가 다 가버렸다. `천 개의 고원`에 밑줄 긋는 사이에, 오늘 밤에 있을 콘서트 일이 떠오른다. 강윤수 단장 화희오페라단의 제4회 평화음악회가 롯데 콘서트홀에서 있게 된다. 작년에 아주 좋았었기 때문에 올해도 꼭 가고 싶지만 밀린 일들로 마음이 부산스럽다. 최동호 선생님의 시 `문득 생각나는 사람`에 곡을 붙여 성악가가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는데.

잠실의 새 롯데월드는 멀다. 한 시간 걸려 가는 사이에 나는 한강 소설 생각에, 연구 프로젝트에 학과 일까지, 그리고 소설을 쓰려는 것에 은행에 대출한 것, 다음날 있을 학교 수업 준비에 낭독회 준비까지, 어지럽게 뒤얽힌 일들을 가닥가닥 짚어본다. 두통이다. 그러고 보니 5년 넘게 매일 먹어야 할 고혈압 약을 오늘도 놓쳤다. 벌써 사흘째. 먹어야 한다고 생각만 하고 매번 잊는 약이다.

어렸을 때는 집중력이 좋았다. 일단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복잡하지도 않았다. 하고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 안 되어서 그런지 하루 종일 그 일만 생각하고 신경을 썼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마음이 흐트러지는 단계를 넘어 흩어져버릴 것 같다. 어제는 뭘 했더라? 하고 생각하면 크게 떠오르는 것이 없다.

마음을 하나로.

오늘을 살며 생각하는 한 가지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