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청렴은 목민관의 본질적인 의무다. 만 가지 선의 근원이고 덕의 뿌리이다. 청렴하지 않고는 목민관을 잘할 수 없다.(廉者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 不廉而能牧者 未之有也)`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공직자의 본질은 `청렴`이라고 설파한다. 200년 전에 쓴 이 책은 치국안민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희귀한 저서로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훌륭한 유산이다.

진경준 검사장의 독직비리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잇단 의혹제기를 계기로 공직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눈총이 따갑다. 민초들은 드러난 일들이 필경 빙산일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키워가고 있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돈과 권력은 달콤해서 반드시 썩는다`는 진리를 넉넉히 체득해왔다. 도대체 이 나라 공직자 비리의 끝은 어디이고, 해결책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발본색원할 비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오는 9월28일 시행을 앞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 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문제가 정치권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김영란법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크게 3가지다. 언론인·사립교원을 적용대상에 넣은 조항의 과잉금지 원칙 위배 여부, 낮게 책정된 수수 허용액으로 인한 농어촌 피해 문제, 국회의원들을 적용대상에서 제외시킨 제5조 제2항 3의 적절성 여부 등이다.

특히 농어촌과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연 11조원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 문제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28일로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계기로 법의 내용을 명확하게 해서 법 시행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제아무리 효과가 좋은 항암제라고 하더라도 정상세포를 함께 망가뜨리는 신약은 결코 좋은 치료제가 아니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

공수처 신설 문제는 해묵은 과제다. 지난 1998년 국민의 정부에서 `공직비리수사처`를 추진하다가 검찰의 반발로 무산된 이래, 참여정부 들어서도 `공직자부패수사처`신설이 좌절된 바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공수처 추진 공조에 합의했다. 더민주당은 공수처 수사범위에 판검사·국회의원·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를 포함하는 쪽으로 얼개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새누리당은 반대다. 새누리당은 “정치권의 입맛에 따라 국가수사시스템을 2년 만에 또 바꿀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진석 원내대표는 25일 혁신비대위 전체회의에서 “공수처 신설은 위헌성, 옥상옥 논란 등의 문제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도 “검찰 스스로 개혁이 지지부진할 경우 공수처 신설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 작금의 여론 향배를 의식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세종 대에 좌의정을 지낸 청백리 맹사성(孟思誠)은 비가 새는 누옥에서 살았다. 한 선비가 이를 딱하게 여기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말 마오. 이런 집조차 갖지 못한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오? 국록을 먹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울 따름이오” 맹사성이 만약 오늘날 고위공직자로 살았다면 동료들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아마도 등신 취급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지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지나친 비관일까.

청렴에 대한 정약용의 사상은 추상같다. `목민심서` 율기 편에서 그는 `오직 선비의 청렴은 여자의 정조와 같다. 털끝 하나라도 더러워지면 죽을 때까지 결점이 된다.(惟士之廉 猶女之潔 苟一毫之點汚 爲終身之?缺)`고 말한다. 청탁(淸濁)은 사람 마음이 하는 일이다. 정약용의 정신에 비춰보면 김영란법이고, 공수처고 다 무슨 소용이랴 싶다. 나라에서 공무원들에게 `목민심서`를 백날 눈으로만 읽히면 무얼 하나. `목민심서`를 가슴으로 읽는 공직자들이 많아야 공직사회가 바뀌고 나라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