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작년부터 연구 과제로 일제 말기에 출판된 문학 작품들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일제 말기 즉 중일전쟁부터 해방 직전(1937년 7월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출판된 문학 작품들이다. 이들 문학 작품의 많은 경우는 현재 우리가 친일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정확하게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친일문학의 많은 부분에 이광수가 포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들을 읽다보면, 이광수와 최근 우리 국민들을 화나게 한 한국 엘리트들과 사고방식이 유사함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그가 쓴 친일 문학 작품의 대부분은 일본의 전쟁에 군인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일본 국민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외국학자는 일본 정부와 총독부의 조선인 전쟁 동원을 연구한 `적을 위해 싸우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이광수는 민족의 적을 위해서 전쟁에 나가서 싸우라, 혹은 천황을 위해서 죽는 것은 명예로운 죽음이라는 내용의 글을 무수히 출판한 것이다.

특히 1943년 8월 징병령 실시가 결정되었을 때, 이광수는 매우 감격하여, `군인이 될 수 있다`는 제목의 소설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이 소설에서 봉일이라는 남자 유치원생이 조선인은 군인이 될 수 없다는 말에 크게 실망하였으며, 7살의 나이에 폐혈증으로 사망하는 순간에도 조선인은 군인이 될 수 없느냐고 아버지에게 묻는다. 이런 장면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조선인에 대한 징병이 필요하다는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을 때 이광수는 `친일협력자`로 규정되어 다른 지식인들처럼 활발한 정치 활동을 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그때까지 자신의 삶을 다룬 `나의 일생`이라는 글을 출판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친일을 하게 된 이유가 일본의 폭압으로부터 `민족의 힘`을 보전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일본이 약 3만5천명 정도의 조선 엘리트들의 목록을 갖고 있었고, 조선인이 전쟁에 협조적이지 않을 때나 일본의 전쟁에 패하게 될지도 모를 경우, 이들을 모두 학살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들 엘리트 집단들이 학살될 경우 `조선은 패망`하게 되고, 조선 민족의 미래는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 친일을 하였다고 친일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광수가 주장하는 조선 엘리트는 단지 문필가나 지식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민족개조론`에 따르면 엘리트들은 문학자, 지식인, 언론기자, 경제인, 지주, 정치인 등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는 이를 `중추계급`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들을 조선 사회를 이끌어나갈 핵심 역량으로 간주하였다. 그의 민조개조론은 이러한 핵심 역량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글이기도 했다.

필자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 기가 막혔다. 이광수는 조선 엘리트 3만 5천명의 목숨 값을 나머지 2천만 명의 목숨 값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이들 엘리트가 없으면, 조선이 망할 것이니 이들을 구하기 위해 나머지 2천만 명의 목숨은 불가피하게 희생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들 엘리트들은 식민지 기간 동안 경제인으로, 군인으로, 그리고 전문기술자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해방 이후의 국가 건설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서, 로마제국의 `망각법`을 모방하여 이들의 친일 행위를 모두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은 최근 논란이 된 교육부 정책기획관 나향욱씨의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을 연상시킨다. 그는 상층의 엘리트들과 정치인들, 기업가들이 국가를 운영해서, 나머지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냐고 말해서 큰 물의를 빚었다. 이러한 발언에는 소수의 엘리트 집단들만 있으면, 국민의 나머지가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국가는 잘 굴러갈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있다. 이런 면에서 나향욱 씨나 그와 생각을 공유하는 한국 사회의 초일류 엘리트들은 이광수의 후계자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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