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br /><br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서울 동대문 바깥 청량리 가는 길에 지하철 몇 호선이던가, 동묘역이라고 있다. 동묘역은 동묘가 있는 곳이라 하여 이름이 그렇다.

이 사당은 삼국지 영웅 관운장 관우를 모시는 곳이다. 때는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 장수 진인이 이 관우를 숭배한 것이 싹이 되어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선조 35년인 1602년 봄에 이곳에 이 사당이 세워졌다 한다. 명나라 황제 신종이 사신을 보내 관운장의 혼이 이 나라를 도왔으니 묘, 곧 사당을 세워 공을 갚으라 했다는 것이다.

역사의 사연이야 어떠하든 그렇게 해서 관운장의 거처가 마련되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 대부분은 옛 사연에는 무심해 보인다.

무엇보다, 이곳은 현재 온갖 날 것 그대로의 생활이 흘러넘치는 곳이다. 백화점 같은 곳에서 파는 물건은 별로 없고 있다 해야 `제 값` 받을 생각 말아야 한다.

새 것도 헌 것 같고 헌 것도 새 것 같은 이곳에서 모든 것은 터무니 없이 싸고 그런가 하면 엉뚱한 것이 비싸다.

예를 들면, 미니 랜턴. 서울대 규장각에서 어느 노 지식인을 뵌 적이 있는데, 그 분이 무슨 글자를 보시려고 주머니에서 쬐그만 물건을 하나 꺼내셨다. 이름하여 미니 랜턴. 그 자리에서 척 하고 켜서 작은 한문 글씨를 읽어 가시기에 하도 신기해서 여쭈어 보니 미제라 하셨다.

과연 미제 같이 작고 성능도 뛰어나 보였으니, 아기자기한 것에 끌리기 잘 하는 내가 예사롭게 지나칠 리 없다. 하여, 동묘 헌책방 `시찰`을 나가는데 전철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웬 행상 리어커에서 바로 그 미니 랜턴을 판다.

-이거, 얼마죠?

아저씨, 내 얼굴을 쓱 보시더니,

-천원요.

천원? 나는 내 귀를 약간 의심했다. 저 미제 뺨치게 생긴, 하지만 중국제일 것 같은, 그러면서도 성능 나빠보이지 않는 미니 랜턴이 단 돈 천원?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몇 개 사버린다.

이런 식이다. 터무니없이 싼 이곳에서 나는 한번은 수도 호스 분무기도 7미터나 되는 것을 삼천원에 사서는 아직도 자동차 뒷트렁크에 모셔두고 다닌다. `기술`에 어두운 나머지 그 쉬운 설치를 하지 못해서다.

그런가 하면 터무니없이 비쌀 때는 또 어떤가. 지금은 많이 깨끗해졌지만 헌책방에는 예나 지금이나 관리 안된 책들이 넘쳐나게 마련이다. 햇볕 뒤집어 쓰고 물에 한번 젖었다 말리운, 먼지 투성이, 지질 바삭거리는 헌책들을 뒤지다 보면 꼭 내 전공 것 아닌데도 갖고 싶은 책, 아니, 차라리 구제해 주고 싶은 책이 눈에 띄게 마련이다.

하지만 책장 모퉁이에 다른 책들에 섞여 아무렇게나 꽂혀 있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큰코 다치는 수가 있다.

-이거, 얼마예요?

아저씨, 내 얼굴 한 번 힐끗 보고는,

-삼십만 원요.

값은 삼십 만원을 선언하시는데 이건 무슨 삼천원 짜리 수도 호스 값을 말하시는 분위기다. 사면 사고 말면 말고, 알아서 하쇼?

잡지 `실천문학`이 살아나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보문역 쪽으로 이사를 간 까닭에 일 삼아 갔다 다시 이 동묘라는 데를 갔다.

오늘은 아무 책도 사지 않을 냉정한 심사다.

리어커에서 물건을 파는데 십이지를 각기 조각한 나무 도장 원목이다. 한 아저씨가 이것들을 유심히 보고 계신데, 또아리 튼 뱀을 새긴 나무도장감이라, 구미가 당긴다.

-이거, 얼마죠?

-만원요.

행상 아저씨, 아무렇게나 부르는 눈치다.

-조금만 깍아 주세요.

-얼마나?

-칠천원만 하시면.

-냅둬요. 내가 이 불경기에 그래도 동묘 문활 지키려고 아침부터 나왔구만.

동묘문화? 헐.

-뭘 그렇게 거창하게 말씀하세요.

나는 웃으면서, 투덜거리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지폐를 내민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맞다. 이 서민냄새 풀풀 나는 동묘, 이것도 분명 문화임에 틀림없다. 재미있고, 정겹고, 눈물날만큼 서글프기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