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노론당파의 옹위를 받아 왕좌에 오른 영조(英祖)는 집권초기 탄생의 비밀과 이복형인 선왕 경종의 급서(急逝)에 연루됐다는 풍설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런데 등극 3년차인 1727년 영조는 우군인 노론을 전격 실각시키고 소론을 전면에 등용하는 정미환국(丁未換局)을 단행해 판을 완전히 뒤엎었다. 소론과 남인세력 일부가 함께 일으킨 이듬해 무신봉기(일명 `이인좌의 난`)때도 영조는 노론이 아닌 소론당파 장수들을 토벌군 지휘부에 임명하는 `신(神)의 한 수`를 구사해 길이 남을`탕평`역사의 기반을 다졌다.

새누리당의 참패로 끝난 20대 총선 직후 진행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전주보다 8.1%p 하락한 31.5%로 나타나 취임 이후 최저점을 찍었다. 새누리당의 지지율 역시 전주대비 7.3%p 폭락한 27.5%를 기록해 30.4%를 나타낸 더불어민주당에게 1위 자리마저 내줬다. 국민의당 지지도 역시 23.9%로 치솟아 새누리당 턱밑에 다다랐다.

세상 그 어떤 일도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4·13총선 참패로 귀결된 정부여당의 참화는 집권 이후 끊임없이 자행해온 `뺄셈정치`의 산물이다. 그동안 언론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지독한 `불통`의 관성에 묻혀 오만방자의 극단을 치닫는 어리석음을 줄기차게 질타했다. 이번 총선참패는 `친박` 패거리가 이를 외면하고 `권력`에 취하여 옹졸한 사심정치를 거듭해온 업보다.

집권당의 참패를 놓고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가 빈대도 못 잡고 초가삼간만 태운 격”이라는 통렬한 비판이 나돈다. 선거 도중 `친박 대권후보`라던 오세훈 후보가 고배를 마신 경우를 사례로, 앞으로도 친박의 의중이 실린 그 어떤 작위(作爲)도 민심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마저 쏟아진다.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내린 징벌은 `회초리질` 정도가 아니라 `몽둥이질`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리 모진 몽둥이 뜸질을 당하고도 새누리당이 오만방자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정치인들의 복당문제를 놓고 또다시 쩨쩨한 시비가 난무한다. 선거를 지휘했던 원내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에 임명하는 뻔뻔함도 드러냈다. 불길 속에 활활 타고 있는 집을 외면한 채 서로 멱살을 잡고 집문서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추한 몰골이다.

총선 닷새 만에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관련 첫 언급이 나왔다. 박 대통령은 1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자리에서 “국민의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며 “새롭게 출범하는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집권여당 참패의 으뜸책임이 박 대통령에게 있다는 비판이 만연하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의 미지근한 태도가 민심에 올바로 부응하고 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뺄셈정치`의 저주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덧셈정치`보다 더 좋은 비방(秘方)은 없다. 내년 말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전이 이미 시작된 마당에 새누리당이 지금 당파싸움 습성을 잘라내지 못하면 정권 재창출은 공염불이 될 게 뻔하다. 10년 넘게 악화시켜 온 친박-비박 갈등구조를 말끔히 청산하지 않는 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는 미래가 없다. 민주주의가 만개하는 빅 텐트(Big Tent)를 치고, 새로운 희망을 가꿔내야 한다.

천한 무수리 출신의 어머니 몸에서 태어난 영조는 피비린내 나는 사색당파 암투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왕이 된다. 사도세자의 비극을 비롯해 사가(史家)들의 날선 비난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탕탕평평(蕩蕩平平)의 지혜를 발휘해 무려 52년 동안이나 왕좌를 지켰다. 긴 세월 임금노릇을 이어간 영조가 부단히 민심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다는 기록은 적지 않다. 새를 때려서 노래 부르게 할 수는 없다. 제아무리 큰 권력도 정치인들을 때려서, 국회를 때려서, 백성을 때려서 박수를 치게 만들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