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규<br /><br />한동대 교수·글로벌리더십학부
▲ 김윤규 한동대 교수·글로벌리더십학부

수도권으로 모든 국가적 역량이 집중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인구와 행정과 산업과 문화를 모두 서울에 모으는 것은, 온 나라를 통틀어 누구에게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넓지도 않은 국토의 10분의 1은 마르고 닳도록 쓰고, 10분의 9는 허전하게 버려두는 것은 국력의 극대화에 불리하다. 수도권은 이미 인구과밀의 고통을 날마다 겪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시간과 에너지가 허비되고 있고, 이로 인해서 수도권 주민들은 삶의 질이 지속적으로 저하되고 있다. 해법은 결국 국토 균형발전이다. 그러려면 모든 지방도시와 농어촌이 살기 좋은 곳이 돼야 한다. 그러면, 포항은 살기 좋은 도시인가.

왜 포항에 살아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는 왜 포항에 사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도 포항에 살자고 권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포항은 이 질문에 대해 “여기에는 일자리가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의 힘은 강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포항으로 몰려 왔고, 그들을 따라 가족들과 소상공인들이 포항에 자리를 잡았다. 인구는 몇 배로 늘었고 살림도 그만큼 팽창했다.

그러나 포항은 그 뒷감당을 할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세계적으로 성장한 산업사회의 성과를, 문화적으로 향유하는 데에는 서툴렀다. 조국근대화를 위해 청춘을 불태우고 퇴근한 청장년들은, 마땅히 누릴 문화가 없어서 친구와 아기들을 데리고 주말마다 다른 도시로 나갔다. 포항에서 재학하던 대학생들도 포항에서 즐길 문화가 없어서 시민과 분리된 포항생활을 하다가 떠나갔다. 포항은 일자리를 내놓았지만 문화적 충족감은 주지 못했다. 그들은 포항이 재미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며 떠나갔다.

아니다. 포항만큼 농산어촌과 근대화 산업사회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도 없다. 신화시대 유적으로부터 최첨단연구단지까지 30분 이내에 답사할 수 있는 곳은 오직 포항뿐이다.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남들에게도 그렇지만, 심지어 포항시민조차도 포항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포항은 자신의 문화적 자산과 인문적 역량을 자랑해야 한다. 포항에는 포항의 인문적 가치를 확인하고 공유하고 재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 없다. 포항시가 행정적으로 정책을 수행하고 포항문화원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포항문화의 앞길을 기획하고 선도할 기관이 필요하다. 포항에도 문화재단을 설립해야 한다. 품위 있는 포항의 미래를 꿈꾸는 밑그림이 그려지기 위해, 문화적 방향타가 있어야 한다. 전국에 수많은 도시들이 문화재단을 가지고 있다. 포항문화재단이 설립되면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문화도시 포항을 조성할 수 있다.

문화재단을 가지면 창의적인 청년 일자리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포항보다 작은 도시들도 전국적 명성을 가진 문화 활동을 해내고 있다.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은 다 젊은이들이다. 포항에서도 그런 청년들이 신나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우수한 청년들을 포항에 정착시키고 그들이 창출하는 문화적 삶의 기쁨에 함께하고 싶다. 그제야, 포항은 살기 좋은 도시가 될 것이다.

포항이 좋아서 산다는 답을 해야 한다. 그러면, 포항이 고향인 사람들은 당연히 행복하겠지만, 직장을 따라 포항에 온 사람들은 얼마나 행운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