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빙허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1921)에는 시대의 단면을 관통하는 풍속도(風俗圖)가 그려져 있다. 불학무식하지만 조신(操身)한 아내와 동경 유학까지 마친 엘리트 남편의 소통부재 상황이 그것이다. 결혼한 지 7~8년 지났건만 남편은 이해 불가능한 인간이다. 중학을 마치고 동경으로 유학 가서 대학을 졸업한 남편에게 아내가 기대하는 것은 흐뭇한 돈벌이다. 그러나 장구한 세월 공부에 시간과 노력을 쏟은 남편은 허구한 날 술만 마신다.

남편이 날마다 술을 마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온갖 궁리와 고민을 거듭하지만 그가 도달한 최종지점은 절망과 환멸이다. 공부했다는 조선인들이 벌이는 명예와 지위 다툼, 무익한 선악논쟁, 주야장창 분열(分裂)과 투쟁으로 얼룩진 조선사회. 기미년 3·1 만세운동이 지나간 지 겨우 이태 만에 경성에서 벌어진 남루(樓)한 풍경이다. 때로는 밖에서 열렬하게, 때로는 두문불출 하면서 남편은 갖가지 해결방도를 추구한다. 하지만 결론은 `술`이다.

사회란 것이 자신에게 술을 권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술을 먹는 것은 “몸은 괴로워도 마음은 괴롭지 않기 때문이고, 조선 사회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정꾼 노릇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그런 남편을 끝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다시 세월이 흐른 다음 두 사람은 어찌 됐을까, 궁금하다. 본성이 선량한 두 사람을 가르는 심연은 `사회`에 대한 관점이다. 아내가 지향하는 윤택한 삶과 남편이 지향하는 번듯한 사회의 간극(間隙). 그것을 요약하는 어휘가 `사회`다. 사회는 부부가 살아가고 있는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을 시공간 배경으로 한다. 개인과 가정의 범주에 머물러 있는 아내와 지식인으로 식민지 조선사회를 고민하는 남편의 시선(視線)이 어긋나 있는 것이다.

`지금`과 `여기`를 바라보는 눈은 `취향`의 문제처럼 복잡하다. 동일한 사안을 두고 판단하는 인간의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그것은 각자의 세계관과 역사관, 그리고 자의식에서 발원한다. `술 권하는 사회`에서 빙허가 주인공의 말을 빌려서 일갈하는 대목은 찌르는 듯 아프다.

얼마 전 39명의 야당 의원들이 192시간 이어간 `필리버스터`가 끝나자마자 여당이`테러방지법`을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통과시켰다. 국민들의 안전을 위한 법률이라는데 왜 야당 의원들이 기를 쓰면서 법안통과를 저지하려 했을까? 흥미로운 점은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이튿날 8만이 넘는 한국인들이 `카카오톡` 같은 `사회연결망 서비스(SNS)`를 버리고 `텔레그람`으로 `망명(亡命)`했다는 사실이다.

식민지 조선시대도 아닌데 대한민국에서 망명객이 줄을 이었다는 사실은 무엇인가! 만일 누군가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생각해 보셨는가! 21세기 대명천지에 온 국민을 사찰(査察)과 감시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법률이 가결됐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러분의 휴대전화가 감청(監聽)될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여당 인사들도 적잖게 사이버 망명을 했다는 소식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국가를 구성하는 근간은 국민이다. 국민은 국가의 소유자산이 아니라 천부인권(天賦人權)을 가진 고귀한 생명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알고 있는 헌법 제1조 1항과 2항을 인용한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백성이 주인인 나라이되, 모든 사람의 입에 쌀이 들어가는 나라가 민주 공화국이다. 그들이 위임한 한시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 정부와 여당이다.

헌법 제17조와 18조를 인용한다.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테러방지법`은 법률이며, 그것은 헌법 아래 자리한다. `하위법`으로 `상위법`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위헌소지가 있다. 텔레그람으로 망명한 한국인들이 평안한 소통과 통신의 자유를 누리기 바란다. 그리고`사회`로 인한 남편과 아내의 소통 불가능한 상황이 조속히 종결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