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br /><br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인터넷을 뒤져 보면 초소형 국가라는 말이 나온다. 혹은 초미니 국가라고도 하는 이 나라들은 국민이 100명도 채 안 되는 나라들이지만 지구상에 약 400개나 존재한다고 한다.

국민, 영토, 주권이 국가의 3요소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이 초소형 국가들은 국민은 수십 명 수준이 대부분이고 무슨 시설 따위를 영토로 삼을 정도로 빈약하며 가장 큰 문제는 도대체 주권 국가로 아무데서도 공인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이제 텔레그래프 지가 소개하고 세계일보의 명민한 기자님이 추려낸 그 국가들의 이름을 나열해 보면, 카리브해의 레돈다 왕국, 영국 남바다의 시랜드 공국, 미국 플로리다 주의 콘치 공화국, 미국 네바다주 사막 지역의 몰로시아 공화국,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 외곽의 우주피스 공화국,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 벨기에 사람이 남극에 세운 플란드렌시스 대공국, 호주 서부의 한 농장주가 자기 농장에 세운 헛리버 공화국, 캐나다의 노바스코샤주에 속한 한 섬의 맨 끄트머리 바위섬에 세운 아우터발도니아 공국, 영국의 코미디언이 자기 아파트에 세운 러블리 왕국 등이 그것이다.

그밖에도 인터넷은 이 초소형 국가, 또는 초소형 국민체에 대한 재미 있는 여러 정보를 알려주는데, 인구 7명의 오스티네시아, 인구 46명의 투 체어스 왕국, 인구가 238명이나 되는 아에리카 제국, 인구 370명 가량의 세보르가 공국, 인구가 단 2명뿐이라는 아틀란티움 제국, 인구 4인의 몰로시아 공화국, 2006년 9월 29일에 수립했다는 인구 12명 이상 된다는 대한제국 같은 것들이 있다.

재미있다. 이쯤 되면 나도 나라 한 번 만들어 보자고 다투어 나설 만도 하다. 왜들 이렇게 새 나라를 자꾸 만들고 싶은 것일까?

이 나라들이 내세우는 이념이나 모토에 힌트가 있다. 예를 들어 우주피스 공화국 헌법에는`사람은 각자의 개성으로 살아갈 권리를 갖고 있다`고 쓰여 있다고 하며,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는 유럽 아나키즘과 히피운동의 본산으로, 덴마크 당국으로부터 자치권까지 인정 받았다고 한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나라라는 것을 빼놓고는 뭔가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주의적이기 때문에 아나키즘 같은 것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한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아주 활발하던 때에도 아나키즘은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등으로 연결되는 마르크시즘 사회주의 운동에 밀려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국가라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없어져야 하지만 이 국가를 없애기 위해서는 국가 아닌 국가를 세워 그것을 없애는 과정을 밟아 나아가야 한다고. 그러면서 아나키들을 향해 비판을 퍼붓는다. 이들은 즉각 유토피아를 만들고 싶어 하지만 그럴 방책이 없노라고..

하지만 나는, 도대체, 언제, 그 국가 아닌 국가라는 것이 국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느냐고 생각한다. 또 20세기 내내 실컷 지구상 이곳저곳 큰 면적을 차지한 곳에서 그 국가 아닌 국가라는 것을 실험해 보았지만 결국은 야만에 귀착되고 만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나는 한국이라는 이 나라를 지독히도 사랑하면서도 이 나라의 국가 체제라는 것이 자유와 인권 면에서 아직도 충분치만은 못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 때문에, 뭔가 더 좋은 나라가 되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오늘도 내가 발명할 초미니 국가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