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혹은 처음을 위하여

▲ 꽃등처럼 환하게 서운암을 밝히는 수많은 장독대들이 소복소복 모여 있다.
▲ 꽃등처럼 환하게 서운암을 밝히는 수많은 장독대들이 소복소복 모여 있다.

봄을 시샘하는 무리들이 저만치 물러났다 싶더니 또다시 기승을 부린다. 그래도 통도사 자장매는 시기를 놓치지 않는다. 선암사의 선암매나 백양사의 고불매보다 가장 서둘러 눈을 뜬다. 고혹적인 자장매 향기를 품고 서운암을 오른다. 투두둑투두둑 실밥이 터지듯 내 가슴에서 홍매화가 쉼 없이 꽃을 피운다.

서운암은 봄이 완연해질 때 와야 좋다. 매화밭에서 한바탕 꽃축제를 열고나면 더 낮은 자리에서 봄꽃들이 지천으로 핀다고 했다. 봄의 문턱에서 여전히 바람은 차건만 영축산은 봄꿈을 안고 나를 맞는다. 꽃등처럼 환하게 서운암을 밝히는 수많은 장독대들, 어둡고 답답한 장독 안에서 발효되어가는 먹거리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매화꽃 아래에서 익어갈 서운암 된장을 상상하며 나를 돌아본다.

더러더러 매화가 하얗게 눈을 뜨는데 수백 년 된 모과나무는 미동도 않고 장독들을 지킨다. 온 몸에 칭칭 모포를 감고 있는 어린 나무들도 있다. 저마다 다른 것을 꿈꾸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거대한 생명의 질서 앞에서 나다움을 생각하며 탑돌이 하듯 장독대 사이를 거닌다.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다.

서운암은 통도사 19암자 중 하나로 1346년(고려 충목왕 2년) 충현 대사가 창건하였다. 1859년 남봉 대사가 중건하였고 근래에는 성파 스님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불교의 전통을 지켜가면서 다양한 문화 행사와 들꽃 축제를 통해 서운암은 제법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빈 매화나무 가지를 스치고 흙길을 따라 쉬엄쉬엄 장경각으로 오른다. 거위 두 마리가 물가를 노닐고 공작새들의 화려하고 긴 꼬리깃털까지, 암자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많다. 비탈길이 삭막할까 황매화 나무들이 무리지어 울타리처럼 둘러서 바람을 막아준다. 머지않아 마른 가지에 물이 오르면 잎새는 유난히 푸른빛을 띠며 노란 꽃물결로 장관을 이룰 것이다.

어릴 적 사랑방 동문을 열면 황매화가 무리를 지어 안겨들곤 했었다. 고향집은 벌써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수많은 추억은 총천연색으로 살아 숨 쉰다. 황매화도 향기가 있었던가. 뜬금없이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릴 적 후각을 더듬으며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기억 속을 헤매는 동안 치마폭을 펼쳐놓은 듯 넓은 마당과 우람한 장경각이 반긴다.

저 아래 서운암이 보이고 좀 더 아래 통도사도 보인다. 내 눈은 이내 숲을 빠져나가 콜록거리며 흐린 하늘을 이고 있는 아파트 숲까지 읽어낸다. 갈색빛 숲의 졸린 눈이 무겁다. 봄이 오면 숲은 파스텔 톤으로 갈아입고 나들이 하듯 사뿐히 일어설 것이다. 봄빛에 물드는 풍경을 상상하다 호젓한 겨울의 끝자락, 아니 봄의 출발점을 즐기기로 했다.

장경각은 새로 지은 건물답게 세련되고 멋스런 ㅁ자 형식으로 16만 도자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다. 와인빛이 도는 문과 기둥은 옷칠을 여러 번 해서 그런지 고급스럽고 격조가 넘친다. 조용히 슬리퍼를 갈아 신고 미로처럼 놓여 있는 장경판 사이를 걷기로 했다. 성파 스님이 1991년부터 2000년까지 해인사 팔만대장경 앞 뒤판을 분리하여 완성했다는 대장경이 가지런하면서도 빼곡히 들어차 있다. 가로 52cm, 세로 26cm 크기의 도자대장경을 보니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아무도 없는 장경각 미로를 합장을 한 채 걷는다. 높다랗게 쌓인 장경판 사이를 걷는 동안 어떤 방해꾼도 없다. 적막감을 친구 삼아 홀로 미로를 헤쳐나가는 동안 무서움과 두려움은 일지 않는다. 낯설고 어색하던 절집이 이제는 내 집처럼 편안해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찰을 찾는 일은 설렘만큼 부담감도 컸었다. 그러나 기행을 통해 삶은 훨씬 여유로워졌으며 사고의 폭과 깊이도 더해 졌음을 확신한다.

기쁨과 아픔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나는 언제나 그 두 가지의 감정을 오가며 글을 썼다. 아름답고 고즈넉한 산사의 밤과 훌륭한 스님들과의 만남, 어쭙잖은 글을 잃고 격려해 주던 독자들도 떠오른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아픔이 필요했다. 서둘러 비워내려고 조바심을 치기도 했고 때로는 지쳐서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들이다.

 

▲ 조낭희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행복했던 순간들은 가슴 속에 별이 되어 힘들 때마다 나를 밝혀 줄 것이다.

연재를 마치면서 나는 무한한 해방감을 만끽하면서 또 다른 시작 앞에서 긴장을 감지한다. 처음 혹은 마지막, 그 의미는 상반되지만 분명한 건 서로 이어져 있으며 닮아 있다는 점이다.

설렘과 긴장이 있는 처음, 자유와 허전함을 몰고 오는 마지막, 둘은 언제나 서로를 그리워하며 동경하리라. 그것이 인생이다. 나는 또 다시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인생은 끊임없이 폐달을 밟아야 앞으로 나아가는 두발 자전거와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