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날, 평온함을 찾아서

▲ 돌 계단 위에 올려진 경주 백률사의 모습이 아름답다.<br /><br />
▲ 돌 계단 위에 올려진 경주 백률사의 모습이 아름답다.

겨울 공기가 유난히 맑고 상큼하다. 한 차례 진눈깨비가 다녀갔는지 들과 길은 드문드문 잔설을 이고도 눈부시다. 어렵지 않게 찾은 소금강산은 초입부터 정갈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소나무 숲 아래로 이어진 길은 호젓하고 평화롭다. 오르막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산책하듯 가벼워 보인다. 소나무와 바위가 적당히 어울린 산은 천년 신라의 숨결을 간직한 야외 박물관으로 손색이 없다.

국보 28호 금동약사여래입상을 경주 국립박물관에서 만난 후 백률사를 만나고 싶었다. 두 팔이 없지만 풍만한 얼굴에 미소가 아름답고 우아한 불상 앞에서 백률사라는 출처는 생소하고 낯설었다. 삼국유사에도 백률사의 영험한 관음상 이적 이야기가 소개된 것을 보면 큰 사찰이었음이 분명하다.

백률사는 불국사의 말사로 이차돈의 순교와도 관련이 깊은 성스러운 사찰이다. 이차돈이 불교 승인을 위해 처형을 당할 때 목을 자르는 순간 하얀 젖이 한길이나 솟았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렸다고 한다. 잘라진 머리는 하늘을 날아 이곳 소금강산에 떨어졌다. 이에 527년(법흥왕 14년) 불교를 승인하고 목이 떨어진 자리에 `자추사`라는 절을 세웠다. 훗날 백률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것을 경주의 부윤 윤승순이 중수하였다.

산길을 오른다는 긴장감이 없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커다란 석불이 보인다. 경덕왕이 백률사로 가는 도중에 염불소리가 들려 땅을 팠더니 나왔다는 보물 121호 굴불사지 사면석불이다. 왕이 그 자리에 굴불사를 세웠으나 절은 없어지고 석불만 남아 있다. 다양한 불상들이 풍만하고 자연스럽게 조각되어 신라인의 불성과 향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불교 예술과 역사를 간직한 채 천오백 여년을 살아온 사면 석불이 뿌듯하고 대견하다.

잘 닦인 포장도로를 두고 돌계단을 디디며 산을 오른다. 쉬엄쉬엄 10여 분을 오르자 백률사는 푸른 대나무 숲에 몸을 숨긴 채 긴 돌계단만 드리우고 있다. 결이 거친 돌계단에 서린 청이끼와 뒹구는 낙엽의 조화, 어느 새 자연과 하나가 되어버린 인공물 앞에서 우리는 웃음을 날리며 사진을 찍는다. 머릿속이 홀가분해진다.

가끔은 사찰보다 산사 가는 길에서 더 큰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어떤 의식이나 노력 없이 몸과 마음이 가볍고 투명해져 오는 것이다. 백률사 가는 산길 역시 너무 짧아서 아쉬울 정도이다. 그런 시간 속에 한량없이 묻히고 싶은데 나의 의식은 또 다른 무언가를 늘어놓으며 발길을 재촉해 댄다.

계단 끝으로 백률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뜻밖에도 아담하고 소박한 사찰이다. 큰 나무 두 그루가 불이문처럼 서서 산사를 지키며 우리를 맞는다. 정적이 감도는 마당과 트인 듯 숨어 있는 경내로 선뜻 들어설 수가 없다. 고즈넉한 여유와 평화 그리고 침묵이 감도는 긴장감 앞에서 가슴만 두근거린다.

마당 끝에 앉아 있는 중년 남자의 뒷모습을 뒤늦게 발견했다. 겨울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도심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미동도 않고 생각에 잠겨 있다. 한 남자의 고독과 침묵이 백률사를 서늘하게 적신다. 이차돈의 순교 장면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는 범종 앞을 지날 때 무심히 질주하는 차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대웅전은 팔작지붕이 아니라 맞배지붕이다. 앞마당에 탑을 세울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암벽 바위에 마애삼층석탑을 새겨 놓은 것도 이색적이다. 고요한 경내와 달리 좁은 법당에는 서너 명의 불자가 기도 중이다. 나도 덩달아 108배를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몸이 마음처럼 가볍질 않아 당황스럽다. 몸과 의식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다 108배를 끝내고 말았다.

절에 오면 의식적으로 나를 돌아보고 삶에 대한 견고함을 다짐하거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삶에 대한 예의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의식이 독단적으로 무언가를 계획할 때 몸이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무심했던 것 같다. 몸은 의식의 강제성에 습관처럼 지배 받아 온 것은 아닐까? 의식과 몸의 불협화음에 자꾸만 의문이 인다.

 

▲ 조낭희<br /><br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삼성각 앞에 서서 가만히 내 안을 살핀다. 그러고 보니 마음을 살피듯 몸의 반응을 제대로 살핀 적이 없다. 늘 컨디션이라는 말로 일축하며 의식으로 몸을 달랬다. 정신은 몸보다 우위였으며 둘을 동등하게 다뤄주지 않았음을 알아챈다. 오늘 같은 날은 바람처럼 산을 휘저으며 동천동 마애삼존불을 만나고 오는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 산이 백률사를 품고 있는 듯도 하고 백률사가 산을 거느리는 것처럼도 보인다. 산과 백률사는 서로에게 부분이기도 하고 전체의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홀로 앉아 있던 남자는 가고 없다. 팽팽히 그를 포획하고 있는 고삐를 풀기 위해 그 역시 내면과의 만남을 가졌으리. 몸과 의식의 흐름을 읽는 일만큼 자기를 바로 세우는 일도 없다. 세상의 움직임과 나의 반응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행하는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려오는 길이 길게 느껴진다. 백률사가 나를 첫 출발선에 다시 세운 까닭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