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욱<br /><br />시인
▲ 김현욱 시인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농사는 자식 농사라고 합니다.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그렇겠지요. 기실 자식 농사는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정상입니다. 자식을 부모 마음대로 어찌 해보려는 게 화근이고 욕심이지요.

예전에 행동주의 심리학자 왓슨(Watson)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게 잘 성장되고 건강한 12명의 아이를 달라. 그리고 나의 특별한 세계 속에서 그들을 양육하게 하라. 그러면 나는 임의로 배정된 어느 누구라도 그의 재능, 기호, 성격, 소질, 능력, 조상의 경력에 관계없이 내가 선택한 어떤 특별한 유형의 사람 이를테면, 의사, 법률가, 예술가, 사업가, 심지어 거지나 도둑으로도 훈련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사람이 로봇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각각의 프로그래밍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설계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행동주의의 한계는 극명합니다. 자녀의 성격과 기질을 살피고 수평적 위치에서 자녀의 인격을 존중하며 나아가 삶의 조력자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 입장에서는 천인공노할 소리지요.

구룡포 농부 황보태조 씨의 5남매는 서울대 의대, 경북대 의대, 가톨릭대 약학과로 진학하여 4명은 의사, 1명은 약사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중퇴 학력이 전부인 황보태조씨의 화려한(?) 자식 농사는 언론매체를 통해 세상에 소개되고 책까지 출간하게 됩니다. 항간에 사람들은 황보태조씨가 5명의 자식을 모두 의사, 약사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행동주의 심리학자 왓슨처럼 말입니다. 무언가 대단한 방법이 있는 줄 압니다. 황보태조 씨의 책을 찾아 읽고 강연을 듣기도 합니다만 그래봐야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굳이 요약하자면, 공부를 놀이처럼, 질책보다는 칭찬을, 아이에 따른 교육법을, 그리고 성실 근면하셨던 부모의 모범이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칼 비테의 자녀교육법`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약 270년쯤 시공간의 차이는 있지만 칼 비테와 황보태조씨는 좋은 부모로서 서로 닮았습니다. 칼 비테(1748~1831)는 19세기 독일의 유명한 천재였던 Jr. Witte의 아버지이자 목사였습니다. 그는 미숙아로 태어난 아들을 가정교육을 통해 훌륭하게 길러 낸 경험을 바탕으로 1818년 `칼 비테의 교육`이란 책을 썼습니다.

당시 루소와 페스탈로치는 재능과 환경의 중요성을 각각 강조했습니다. 칼 비테는 페스탈로치의 견해에 가까웠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모든 아이들이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다면 누구나 80~90%까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는 누구나 잠재력(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특히, 4세 이전의 환경이 아이의 인격과 재능, 소질에 큰 영향을 준다고 칼 비테는 굳게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첫째는 언어, 음악, 문자, 그림과 같이 지능을 형성하고 대뇌 활동의 기초가 되는 것과 둘째는 올바른 인성과 태도다.` 칼 비테는 가난한 시골의 목사였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성공적인 자녀교육의 첫걸음은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부모가 금세 알아차리는 것에 있고, 이는 부모와 아이가 하나의 띠로 연결되었다는 뜻으로 훗날의 교육에 감정적인 기초가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황보태조씨는 책 출간 후 받은 인세를 전액 사회에 기부하였습니다. 그의 5남매가 모두 의사, 약사가 된 것보다 부모의 따뜻한 가슴을 이어받은 자녀들이 어떤 나눔의 삶을 살 것인가가 더 궁금하고 가슴 설렙니다. 자식 잘 키워,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보다 더 훌륭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