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 ♥2015 따뜻한 마무리를
한때 교사 재직 김광근씨
한글교육 무상 재능기부
젊은이들 못잖은 열정 과시“
가슴속 말 표현 돕고 싶어”
새해엔 문집도 만들 계획

▲ 포항시노인복지회관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글 강의 재능기부를 하는 김광근 씨가 직접 만든 `한글표`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고세리 기자

해방 이후 한국전쟁 등으로 지독한 가난이 덮쳤던 1950~60년대. 당시 세대는 공부는커녕 그날의 끼니를 걱정하고 살아야 했다.

`가난해서, 여자라서` 등 다양한 이유로 글조차 배울 수 없었던 설움은 오늘날까지 이들 세대의 평생의 한(恨)으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아픔을 딛고 배움의 열정과 희망을 담아 새로 한글 공부를 시작하는 어르신이 늘어나는 추세다.

`가방 메고 학교 가는 것`이 소원이었던 어린 소년·소녀를 가슴 속에 간직한 채, 떨리는 손으로 연필을 쥐고 한 글자씩 알아갈 때의 성취감은 어르신들에게 새로 태어나는 듯한 기쁨을 선사한다.

포항에도 이처럼 배움이 고픈 이들을 위해, 여가를 즐길 연세에도 불구하고 직접 `강의자`로 나선 이가 있다. 주인공은 포항시노인복지회관에서 한글 강의를 맡고 있는 김광근(73) 어르신.

그는 젊은 시절 교사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던 노하우를 살려 최근 노인복지회관을 찾아오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는데 열정을 쏟고 있다.

강의료는 전혀 받지 않는 말 그대로 `재능 기부` 활동이다.

김씨는 과거에도 노인복지회관에서 원예반 강사를 맡아 공휴일도 없이 매일 화분을 가꾸며 회원들에게 화분 재배법 등에 대해 가르치기도 했다.

이번에는 전임 한글 강사가 개인 사정으로 수업이 어려워져 주변의 권유로 대리 수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 계기다.

퇴직 이후의 삶은 주변의 사람들을 돕고 베풀며 살아가고 싶었는데 그에게 때마침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오랜만에 오른 교단이지만 학생들 앞에 다시 섰을 때 기분은 처음 학교로 발령받았을 때와 다를 바 없는 `새내기 교사`였다.

지금은 수업에 들어가는 교재도 직접 만들고 자신 만의 프로그램도 구성하는 등 열정만큼은 한창 활약하고 있는 창창한 젊은 교사들과 견주어도 이길 기세다.

사실 김씨가 처음에 수업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감정은 복잡했다.

60여년 이상 한글을 모르고 살아온 이들이 많다는 현실이 실제 그가 교직에 있었을 때는 쉽게 겪을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

강사 일을 시작하게 되니 생각보다 한글을 잘 모르는 이들이 더욱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막막하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김씨는 다가오는 새해에는 함께 공부한 학생들과 함께 작은 `문집`을 내는 것이 목표다.

단순히 `가나다`같은 문법을 배우기보다는 눈으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해가 지며 붉게 물든 멋진 광경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가슴 벅찬 일일 것”이라며 “살면서 느낀 것들을 글을 통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 나아가 자신의 학생들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직접 편지를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한평생 살아오며 가슴 속에 묻어뒀던 많은 말을 표현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돕고 싶다는 것.

김씨는 “학생들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를 글자로 적어 전할 수 있게 된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며 “새해에는 학생들이 직접 쓴 편지로 가슴 속에 오랫동안 묻어둔 말을 전하길 바란다”고 했다.

/고세리기자

manutd20@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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