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봉준<br /><br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

지난 봄, 다가 올 여름 장마를 걱정하며 몇 해를 미루었던 제습기를 구입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몇몇 제품들을 요모조모 비교한 후 적당한 가격대에 다양한 기능이 장착된 기기를 장만한 뒤 습해질 날만 기다렸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여름 내내 제습기를 작동시킨 횟수가 채 열 번을 넘지 않았다. 남달리 절약정신이 투철해서가 아니다. 장마 기간도 그다지 길지 않았을 뿐더러 비다운 비도 흠씬 내린 기억이 없다. 오히려 어느 순간 가뭄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기우였으면 좋으련만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가을이 끝나갈 무렵까지 예년 같잖은 가뭄에 전국의 대지가 타들어갔다.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진 저수지 바닥이 연일 각종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고 일부 지역은 급기야 제한급수, 단수로 이어졌다.

다행이다. 11월로 접어들며 며칠 간격으로 연일 비가 내렸다. 모두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누구에게랄 것 없는 감사의 말이 쏟아진다. 갈라진 틈새로 스며드는 가는 물줄기를 바라보는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겼고, 한 줄기 두 줄기 모여 조금씩 높아지는 수위에 근심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이 역시 비가 내리는 날수가 늘어나다보니 또 다른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때 아닌 장마에 또 누군가는 피해를 입고 예기치 못한 아픔을 겪기 때문이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라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하다. 또한 걱정도 태산이라는 비웃음도 살만하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걱정의 시작은 일상을 벗어난 자연 현상에 대한 당혹감 때문이다. 우리의 산천은 사시사철 넉넉한 물줄기를 흘러내렸다. 또한 뚜렷한 사계절은 인간이 누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한 환경적 조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순간 여름이고, 또 어느 순간 겨울로 넘어선다. 그나마 장마 기간을 제외하면 대개의 개천과 강은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다.

비단 `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을 둘러 싼 자연이 병들어 있다. 예상을 넘어선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그 파괴력도 점점 커져간다. 미세먼지 농도가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고 뿌연 먼지로 덮인 날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가뭄과 더불어 대지는 사막화되고, 해수면의 상승으로 섬과 해안 국가는 존립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 지구적인 기온 상승은 대지와 해양의 식생을 빠른 속도로 바꾸고 있고 우리 인간은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로 미래를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환경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은 지역 단위, 국가 단위를 넘어서 전 지구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열렸던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지구 온난화를 규제하고 방지하기 위해 192개국이 참여한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바가 있다. 이후 1997년 도쿄의정서를 통해 구체적 실천방안을 논의하는 단계로까지 발전되었다. 그리고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1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는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열리고 있다. 벌써 이십 년 세월이 넘어서도록 세계 각국이 기후와 환경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아울러 이토록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임을 직감할 수 있다. 방법은 하나다. 이 문제는 정상들이 모여 선언문을 만들고 협정서에 서약을 한다고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우리 각자의 인식 변화와 실천적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일찍이 `물이 생명이다`를 부르짖었듯이 이제는 `자연이 밥이다`를 외칠 때다. 이건 생존의 문제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