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br /><br />논설위원
▲ 김진호 논설위원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성공한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1803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산문가이자 사상가이며 시인이었던 랄프 왈도 에머슨은 성공적인 삶을 명쾌하게 정의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날마다 많이 웃게나/지혜로운 사람에게 존경받고/ 해맑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들에게 인정받고/ 거짓된 친구들의 배반을 견뎌내는 것,/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알아보는 것,/ 튼튼한 아이를 낳거나/ 한 뼘의 정원을 가꾸거나/ 사회여건을 개선하거나/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놓고 가는 것,/ 자네가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라네.`(시 `성공이란` 전문)

에머슨이 말한 성공적인 삶에 가장 부합하는 사례가 페이스북의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와 프리실라 챈 부부가 아닐까 싶다. 저커버그 부부는 최근 첫 딸의 출산 소식을 알리면서 재산의 99%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저커버그와 그의 중국계 아내가 보유한 페이스북의 주식 가치는 450억달러(약 52조2200억원)에 달한다. 그는 딸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를 통해 “우리가 사는 오늘의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네가 자라기를 바란다”고 기부 이유를 밝혔다. 세 번의 유산 끝에 어렵게 얻은 딸을 위해 52조원 대신 `더 나은 세상`을 유산으로 남기겠다고 약속했으니 에머슨의 성공이란 정의에 완벽히 부합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약관의 나이에 천문학적인 부를 쌓아올린 저커버그야말로 인터넷·모바일 시대가 낳은 살아있는 성공신화다. 그런 청년이 부와 명성, 안락한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딸에 대한 사랑을 인류사회에 대한 공헌으로 승화시킨 모습은 자못 감동적이다. 저커버그의 기부 약속은 한 세대 앞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부부와 워런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의 사회공헌 활동을 떠올리게 한다. 게이츠는 부인 멜린다 게이츠와 자신의 이름을 딴 총자산 346억 달러 규모의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하는 등 자선봉사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역시 총 250억 달러(약 29조원)를 기부해 기부의 큰손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저커버그 부부의 기부소식을 듣고 “두뇌, 열정, 자원이 합해져 수백만 명의 삶을 바꿀 것”이라면서 “미래 세대를 대신해, 그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젊었을 때 지칠 줄 모르는 기업가 정신으로 돈을 벌고, 성공한 후엔 사회공헌으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것이 미국 부자들의 삶의 방식이다

한국의 기업가들은 어떤가. 장학사업과 교육사업에 헌신한 유한양행 설립자 고(故) 유일한 박사와 같은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에 상응하는 대재벌이 사회공헌을 위해 재산의 상당 부분을 기부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재벌기업이 해마다 많게는 수백억 원의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지만 알고 보면 회삿돈으로 생색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범법행위로 사법처리될 처지에 놓인 기업인이 여론무마용으로 기부 계획을 밝혔다가 눈총을 받는 경우도 적지않았다.

시인 정호승은 이렇게 노래했다.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꽃씨 속에 숨어있는/ 잎을 보려면/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꽃씨 속에 숨어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꽃씨 속에 숨어 있는/꽃을 보려면/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시 `꽃을 보려면`전문)

시인은 꽃을 보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돼야 한다고 손짓한다. 눈이 녹기를 미처 기다리지 못하고,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리지도 못하고, 내 속을 찌르는 칼마저 버리지 못했다면 오늘 들판으로 나가 먼저 봄이 되어도 좋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먼저 세상의 봄이 된 저커버그 부부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