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명래수필가·영남수필문학회장
`커피 좋아하신다고요? 그럼 혹시 커피열매를 본 적은 있는지요? 바알갛게 익어가는 커피열매를 단 한 번이라도 보면 아마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커피를 즐겨 마시는 분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커피를 즐겨 마셔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앉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언제부턴가 나에게 있어 커피는 편안함과 여유를 주는 정신치료제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요즘 들어 아내로부터 제발 커피 좀 줄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여전히 그 맛과 향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어 걱정이다. 건강상의 문제로 인하여 커피를 마시면 큰일 난다는 의사의 처방이 있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이 커피를 계속해서 마실 것이다.

그런데 커피에 대한 나의 막연한 짝사랑에 변화가 생겼다. 지난여름 하와이 여행길에서 커피열매를 직접 본 후부터는 커피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커피가 좋아졌다. 커피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빅 아일랜드 코나(Gona)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커피농장 방문이 잡혀 있었다. 커피농장이 다 그렇고 그렇겠지 하는 생각에다가 전날 해발 3천m의 마우나케어(Maunakea)에 다녀와 그런지 약간은 심드렁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내 평생 언제 또 올 수 있으랴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10여 분이나 달렸을까. 커피농장에 닿았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들고 커피나무가 자라고 있는 밭으로 갔다. 얼핏 보면 익기 전의 도토리나 풋대추와 흡사한 모양의 커피열매가 가지마다 포도송이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바알갛게 익어가는 것들과 아직 푸른 것들이 섞여 있는 것도 있었다.

푸르고 붉은 커피열매에 빗물이 맺혀 있는 모습이 고왔다. 참으로 고왔다. 제 자리에서 그냥 곱기만 한 것이 아니라 풋풋한 가슴을 앞세우고 달려들어 내 눈을 찔렀다. 손을 뻗어 움켜쥐고 쥐어짜고 싶을 만큼 색깔이 고왔다. 나도 몰래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운 것을 보고 온 몸이 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실내로 안내되어 수확한 커피열매를 자루에 담아 쌓아 둔 곳에서 부터, 껍질을 벗기는 공정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커피 시음장, 커피 판매장까지 차례로 구경을 했다. 그러나 커피 열매가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얼른 밖으로 나왔다. 좀 전에 보았던 곱디고운 커피열매들이 계속 눈에 어른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모처럼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코나에서 사온 100%짜리 원두 봉지를 열어 먼저 코로 냄새를 맡는다. 향이 여전함을 확인한 후 한 숟가락 떠내어 분쇄기로 갈아낸다. 커피메이커에 필터를 찾아 끼우고 적당량의 물을 붓고 스위치를 누른다. 이내 물이 끓으면서 커피냄새가 방안 가득 번진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제 마신 커피에는

와이키키의 칼칼한 파도소리와

코나 해변의 바람 냄새가 들어있더니

오늘 아침 커피 잔에는

폴리네시안 소녀의 눈빛이 들어있네

달콤한 사랑까지 들어있네

심장을 뛰게 하는

붉은 영혼의 열매

아, 내 사랑 커피!

커피잔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간다. 커피를 신이 내린 음료라 했다는 말에 깊숙이 긍정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