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향기 맡으며

▲ 동화사 옛길을 걸어서 아치형 해탈교를 건너 108계단을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세계 최대의 석불인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이 있다.
▲ 동화사 옛길을 걸어서 아치형 해탈교를 건너 108계단을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세계 최대의 석불인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이 있다.

중양절을 앞두고 국화 축제가 한창인 동화사를 찾아 나선다. 도로는 연휴 첫날의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는 중이다. 속수무책 끼어드는 차량들 틈에 갇혀 나는 느긋하게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를 듣는다. 중저음 첼로 음색이 우울한 마음을 다독인다. 아침 하늘도 나만큼이나 심기가 흐려 보인다.

단풍이 든 도로를 휘이휘이 돌고 걸어서 큰 금강문을 통과한다. 승시축제로 모여든 인파들로 수미산 불국정토는 간 곳이 없다.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국화를 좋아하는 마음만 챙겼던 것 같다. 옛날 스님들이 물물 교환하던 이색적인 장터도 인파에 떠밀려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동화사는 493년(소지왕 15년) 극달 화상(極達和尙)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하다가 832년(신라 흥덕왕 7년)에 심지 왕사(心地王師)가 중창하였다. 겨울철인데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하여 동화사로 고쳐 불렀다. 금산사, 법주사와 함께 법상종 3대 사찰로 대구를 대표하지만 내게는 이름만 익숙한 사찰이다.

보물 제 1563호 대웅전 앞마당을 국화로 만든 법계도와 인파가 막아선다. 많은 사람들이 법당에서 절을 하거나 법계도를 돌고, 또 그만큼 많은 사진작가와 관광객들로 절은 북새통을 이룬다. 국화의 자태와 향기는 인파에 갇혀 내게로 전달되지 못하고 멀기만 하다. 낯설고 어색한 풍경 속에서 그만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디서 무엇을 찾아야 할지 난감하다.

때마침 문화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으로 웅장한 동화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역사적 가치는 생각보다 훌륭했다. 봉황이 알을 품는 형국인 봉소포란형의 명당에 위치한 대웅전 용마루에는 호국사찰임을 말하는 녹유가 자랑스럽게 반짝이고 해설사의 낯빛은 더욱 환하다. 점심공양을 하고 가라며 하나 뿐인 식권을 선뜻 내어주는 해설사, 멀기만 하던 동화사가 또 한 겹을 벗고 다가온다.

유대감이란 것은 바깥으로 향하는 작은 연결고리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나는 낯선 이들 앞에 서면 습관처럼 문을 닫아걸고 내 안에서 무언가를 구하려고 했다. 내가 찾는 열쇠는 언제나 현재에 있는데 나는 늘 뒷걸음만 쳤다. 무엇이 인파를 싫어하는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공양 후 다시 찾은 대웅전은 여전히 북적이는데 지척에 있는 영산전은 조용하다. 법당에서 홀로 기도하는 불자와 흙담 너머를 기웃거리는 코스모스들의 가냘픈 몸짓, 비질 자국이 선명한 선방 마당 위로 번지는 가을, 그 낮고 고요함 속에는 근접할 수 없는 엄숙한 평화가 있다. 또 다른 동화사의 모습이다.

아치형 해탈교를 건너고 백팔번뇌 계단을 오르면 300t 원석으로 조각된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만날 수 있다. 1992년 완공된 약사여래대불은 높이가 17m로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님 진신사리 2과가 모셔져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 안고 있는 난제, 통일을 향한 염원에 나도 마음을 모으고 싶다.

다양한 빛깔의 국화들이 빚어내는 모형들과 통일대전 앞에 설치된 특설무대, 크고 웅장한 여래불과 인파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허탈감만 안고 돌아갈 것이다. 우측 벽면을 장식한 금색의 반야심경이 이제는 제법 친숙하다. 낮은 소리로 반야심경을 읊고 나니, 군중 속에 홀로 있는 나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다.

무리에 섞여 나도 노란 국화들이 길을 여는 화엄일승 법계도를 돌기로 했다. 의상대사가 화엄사상의 요지를 한 줄 시(詩)로 축약한 법계도는 54개의 각을 이루면서 210자가 한 줄로 연결되어 있다. 시작과 끝이 같은 지점에서 만나는 신기한 미로를 두 손을 모으고 걷는다. 국화향기에 젖고 또 사색에 젖는다.

인파 속에서 나를 지키려고 발버둥 쳤던 내가 보인다. 앞서 가는 사람이나 나를 위협하듯 주변을 맴도는 꿀벌은 나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낳고, 생겨난 것은 반드시 사라지는 게 세상의 이치일진데 무엇을 그리 두려워 했던가. 경계 짓는 마음이 없으면 어디서나 편안해질 수 있다.

우울했던 아침, 먼 데서 걸려온 친구의 전화 한통이 유난히 반갑고 낯선 타인의 웃는 얼굴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원인과 결과가 서로를 전제로 하여 성립하듯이 기쁨과 슬픔도 어쩌면 맞물려 있다. 가난과 고독 속에서도 순수하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관조하던 시인 천상병의 `국화꽃`이 떠오른다.

 

▲ 조낭희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오늘만의 밤은 없었어도/ 달은 떴고/ 별은 반짝였다/ 괴로움만의 날은 없어도/ 해는 다시 떠오르고/ 아침은 열렸다/ 무심한 내가 아니라도/ 탁자 위 컵에 꽂힌/ 한 송이 국화꽃으로 나는 빛난다.”

행복은 내 안에 스스로 심어야 한다. 행복을 심고 가꾸는 일은 어렵지 않은데, 다만 소홀했거나 무심했을 뿐이다. 노란 국화를 좋아하던 친구가 떠오른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정을 국화 분 하나에 심어 보내야겠다. 그녀의 방에 국화꽃이 필 때 내 안에도 향기 가득한 별이 뜨리라. 저만치 법계도의 출구가 보인다. 날씨만큼 마음도 청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