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9돌 한글날 맞았지만…
지자체 주최 행사·축제명
외래·외국어 사용 남발에
무리한 조어·합성 `눈살`
“한글사랑 앞장 못설망정
되레 혼탁 부추기는 꼴”

▲ 멀티플렉스 영화관 메가박스는 한글날을 맞아 현재 상영 중인 영화의 제목을 한글로 바꾼 포스터를 선보였다. `에베레스트`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탐정 더 비기닝`은 `추리꾼, 그 시작`으로 바꿔본 것. 누리꾼들은 “신선하고 재밌는 한글날 이벤트” “한글날의 의미를 새겨보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에어브러시 패션타투` `낙동강 馬구마구 축제` `청정자연의 선물, 영양고추愛 빠지다` `必 so Good`... 남발되는 외래어와 맞춤법과 문장구조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조어의 범람. 한글이 처한 서글픈 현실이다.

오늘은 569돌 한글날. 그 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과 글은 그 민족의 역사를 담고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반포한 1446년 이후 한국인들은 한글의 탐구와 발전적 계승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 이 질문에 긍정적 답변을 내놓기는 힘들 듯하다. 한글의 혼탁과 왜곡은 이미 어제오늘 지적된 게 아니다. 최근엔 그 혼탁함이 지방자치단체가 후원·주최하는 각종 축제와 문화행사에까지 번져 한글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포항시 영일대해수욕장에서 매년 여름 개최되는 `포항국제불빛축제`. 한여름 밤의 낭만을 찾아 시민들이 몰리는 이 축제의 세부 행사는 `Daily 뮤직불꽃쇼` `불빛 버스킹페스티벌` 등으로 구성됐다. 무슨 뜻인지 짐작은 가능하나 굳이 문법적으로도 어색한 이런 명칭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매일 열리는 음악불꽃축제` `불빛 거리공연축제`라고 하면 될 것을.

경주시가 매주 금요일 사적 제512호 봉황대고분 특설무대에서 여는 `봉황대 뮤직스퀘어`, 김천시가 주최하는 `김천 직지나이트투어`, 봉화군 은어축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에어브러시 패션타투`, 영주시의 대표 축제인 한국선비문화축제 부수행사 `生(생)과 死(사)의 퍼포먼스`, 울진군이 주최한 `워터피아 페스티벌` 등도 축제와 행사 명칭에 외래어를 남용한 사례로 보인다. 또, 대구시립국악단 수석단원인 대금 연주자 양성필씨가 결성한 악단의 이름은 `월드뮤직 프로젝트그룹 必 so Good`이다. 국악인조차 어설픈 외래어 작명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세계화`는 외국·외래어를 남용하는 게 아닌 제 것을 지키며 발전시키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는 게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다.

지난 1일 구미시에서 열린 `구미 낙동강 馬구마구 축제`는 얼핏 봐서는 어떤 성격의 행사인지 그 의미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말(馬)과 구미의 `구(龜)`를 합성한 듯한데, `전국학생승마선수권대회 겸 유소년 승마대회`란 부제를 확인하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맥락의 고리가 약한 합성어의 사용이 가져온 폐해다. 한글을 써온 사람들이 한글을 읽고도 모호함을 느낀다면, 이는 대중성을 지향해야 할 축제의 명칭으론 부적절한 게 아닐까.

문경시의 전통찻사발축제 프로그램 중 하나인 `힐링다례` 역시 치유를 뜻하는 영어단어 힐링(healing)과 차 마시는 예법을 지칭한 다례(茶禮)를 합성해 신조어를 만들었는데 무릎을 칠 아이디어라고 보기 어렵다. `치유를 위한 차 예절`이라 했어도 얼마든지 의미 전달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영양군이 주최하는 `영양고추 H.O.T 페스티벌`의 주제로 소개된 `청정자연의 선물, 영양고추愛(애) 빠지다` 역시 영양고추와 사랑(愛)이란 두 단어로 조어를 만들었으나 신선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와 함께 칠곡군의 `세계 사물놀이 겨루기 한마당`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개최하는 축제인데도, 세부 프로그램 명칭을 `부대행사`라 하면 될 것을, 왜 `프린지 페스티벌`로 정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관객이 없지 않을 것 같다.

외래어의 과다한 사용과 무분별한 합성어와 조어의 남발, 축제 홍보문구에서 가끔씩 눈에 띄는 비문은 비단 앞서 언급한 지자체의 축제와 문화행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경상북도 내 23개 시·군 홈페이지만 봐도 유사한 사례가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국내 지자체는 한 해 1만2천여 건에 가까운 축제와 행사를 개최한다. 지자체마다 비슷한 유형의 축제를 경쟁적으로 열다보니 변별성은 떨어지고, 관람객 만족도 또한 낮은 게 사실. 그런 까닭에 “혈세를 낭비하면서까지 이런 축제를 열어야하나”라는 목소리도 높다. 경제적 관점에선 낙제점을 받고 있는 것.

여기에 더해 한글의 계승과 연구·발전에 힘을 보태야 할 지방정부가 오히려 한글의 혼탁에 일조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지자체 축제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이들의 고민과 개선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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