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전해오는 영혼의 울림

▲ 구례 천은사 전경
▲ 구례 천은사 전경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로 알려진 천은사는 신라 덕흥왕 3년(828년) 인도의 승려 덕운조사에 의해 감로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고려 충렬왕 때는 남방 제일 선찰로 승격되기도 했지만 화재로 소실되고 1679년(숙종 5년) 단유선사에 의해서 중건되었다. 중건 당시 샘가에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한 승려가 잡아 죽였더니 그 후 샘이 말라버렸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하여 천은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이름을 바꾼 뒤 원인 모를 화재가 끊이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조선 4대 명필의 하나인 원교 이광사가 수체(水體)로 `智山 泉隱寺`라는 글씨를 써서 수기를 불어 넣고 일주문 현판을 달았더니 다시는 화재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새벽녘 고요한 시간에 일주문에 귀 기울이면 현판 글씨에서 물소리가 연연히 들린다고 한다.

과연 일주문은 물 흐르듯 부드러운 글씨를 자랑하며 나를 반긴다. 정교한 조각과 오래된 단청에 어울리는 유려한 서체 사이로, 23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을 잃고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의 외로운 삶이 떠오른다. 결코 녹녹치 않았던 삶의 그림자가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역적의 후손이라는 오명 속에서 출세의 욕망을 버리고 귀양지를 전전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서체에 대한 열정과 꿈이 그를 버티게 했으리라.

무지개가 드리워진다는 수홍루의 반영과 작은 호수의 풍광 앞에서 나는 버려야 할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제대로 인식하며 살아가는지 반문해 본다. 버리면 반드시 다른 길이 보이는 법, 그런데도 긍정적인 희망을 외면하고 지나치게 스스로를 닦달하며 엉뚱한 것에 집착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원교 이광사의 글씨보다 위기 속에서 지혜롭고 의연하게 대처한 그의 철학이 더 존경스럽다.

현판도 없는 천왕문이 상념에 젖어 있는 나를 흔든다. 잠시 생각을 비우고 부처님 세계로 들어서기 위한 예를 갖춘다. 인적 없고 고요한 마당, 누하진입식이 아닌 보제루도 문을 닫은 채 고요하다. 지척에 있는 화엄사의 명성에 가려 힘들 것만 같은 천은사의 아픔과 고독이 먼저 떠오른다. 상대적 열등감이나 박탈감만큼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것은 섣부른 기우였다. 재야에 묻혀 자존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선비 같은 지조와 품격을 뒤늦게 발견한다. 어쩌면 화엄사가 곁에 있어 천은사의 소박한 절제미가 더 빛나 보이는지도 모른다.

주법당 극락보전은 다포계 양식의 팔작지붕으로 용마루 끝장식의 용두를 비롯하여 무려 13마리의 용을 키우고 있다. 좌우측에는 황룡과 청룡의 머리가, 대각선 쪽에는 꼬리가 조각되어 눈길을 끈다. 용을 찾으며 다양한 조각들이 펼쳐내는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어 유영하는 것도 재미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마당은 연못이고 극락전은 연꽃이기에 연못으로 뛰어드는 형상의 수달과 하마는 생동감이 넘친다. 수백 년 전의 지혜로운 상상력과 창의성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무엇보다 극락보전 현판이 원교 이광사의 글씨라는 것을 알고 가슴이 더 두근거린다. 제자인 창암 이삼만이 쓴 보제루 현판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천부의 필재(筆才)를 타고난 창암은 병중에도 하루에 천 자 쓰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벼루를 세 개 구멍 내고 천 자루의 붓을 닳아 없앴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미치도록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다르면서도 닮은 듯한 창암과 원교의 글씨를 번갈아 보노라니 두 분의 모습을 대하는 것 같다. 원교가 쓴 극락보전은 창암에 비해 기름지진 않지만 힘이 넘쳐 볼수록 매력적이다. 창암은 해서의 기본 되는 50자를 매일 반복 연습할 정도로 기본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보제루 현판은 구김 없이 맑게 자란 사대부 도령의 청정한 기운을 보는 것 같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보다 까마득히 먼 곳에서 전해오는 영혼의 울림이 더 감동적일 때가 있다.

천은사가 어떤 국보급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지 오늘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산사 마당에 서서 조선의 두 명필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햇살만 가득할 뿐, 바람 한 점 없다. 글씨가 살아나와 바람이 되고 물소리 되어 가슴을 적셔주기를 바라보지만 나의 부족한 안목과 심미적 감성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하며 나를 다독인다.

 

▲ 조낭희<br /><br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목탁소리 들리지 않아도 가슴에 법문이 이는 절, 계곡물은 쉼 없이 흘러가고 담장너머 나무들의 자태도 수려하다. 우거진 녹음과 새소리를 벗 삼아 숲속으로 난 길을 걷고 싶다. 밥술이나 뜨는 시골 유생의 설익고 떫은 자존심이 아니라 고요한 품격과 여유가 넘치는 절, 천은사는 겸손해서 좋다. 천 년 고찰의 품에 안겨 자라는 300년 된 보리수나무를 올려다본다.

오래된 석축과 단아한 담장에 기대 앉아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싶다. 호젓한 숲길을 걸으며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도 싶다. 빈곤한 언어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던 나는 사라지고, 분명 내 안에는 숲이 자라고 맑은 햇살과 물소리가 넘실되리라.

    조낭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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