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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형 정치선임기자(국장)

지난 주말 아침 포항 여객선터미널 인근의 한 목욕탕에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유니폼을 갖춰 입은 대학생 100여명이 목욕탕 휴게실을 점령(?)한 것이다. 문제는 휴게실 공중을 가로지르며 일회용 노끈으로 길게 만들어진 빨래줄에 형형색색의 속옷 등이 널려 있었던 것. 일반손님들이 아연실색했다. `독도사랑`이라 적힌 유니폼을 입은 그들은 서울 소재 대학생들로 광복절은 지났지만 독도탐방행사 차 찜질방을 겸하고 있는 목욕탕에서 하룻밤을 묵고 당일 오전 9시 50분 발 울릉도행 여객선을 타려 했던 것이었다. 휴게실 공중을 가로질러 걸려 있는 빨래감을 보면서 펄럭이는 태극기를 연상했다. 청년들의 독도사랑 애국정신이 그 깃발 속 진한 땀냄새로 와 닿았다.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3개가 있는 화장실 변기는 막힌 채로 오물이 넘쳐났다. 담배꽁초는 널부러져 있고. 일반 손님들은 혀를 찼지만 난 이해했다. 100여명의 인원이 한꺼번에 몰렸지만 그들이 이용할 최소한의 편의시설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문제도 아니고 업소 주인의 문제도 아니다. 어쩔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었다.

`지식인의 두 얼굴`의 저자 폴 존슨은 영국의 보수 언론인이다. 그는 책에서 위인전에 나오지 않는 지식인들의 이면의 삶을 추적, 그들의 이중성을 파헤치고 있다.

루소는 그 자식들을 부양하기를 거부하고 고아원으로 보냈다. 상당한 유산을 상속받은 마르크스는 낭비벽과 노동의지 부족으로 늘 어렵게 살았으며 45년간이나 그의 가정부를 착취했다.

대 문호인 톨스토이는 여성과 교제하는 것이 `악`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은 사창가를 드나들었다.

하지만 난 이들 지식인의 이중성에 돌팔매질을 않기로 했다.

지식인의 위선만을 기준으로 그의 사상까지 쓰레기통에 쑤셔넣을 수는 없다. 다만 지식인의 위선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봐야 한다. 만약 우리가 그들과 같은 위치라면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를. 그래서 이 책은 지식인의 책임이 어떤 것인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는 교훈을 던진다. 이것도 불편한 진실이다.

내년 4월 20대 총선이 다가오자 여야가 `선거룰`을 놓고 치열한 대치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완전국민공천제를 당론으로 채택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권역별비례대표제를 앞세워 여당과 빅딜을 시도하고 있다. 여당 내부에서는 완전국민공천제를 놓고 친박과 비박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명분이 무엇이건 내부적으론 공천지분을 놓고 싸움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새정연은 현역의원 20% 물갈이를 앞세운 혁신안을 당무위에서 우여곡절 끝에 통과시켰지만 주류와 비주류간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다 총선 전 당명까지 바꾸려고 한다.

어떤 경기든 룰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다. 선수의 기량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총선을 앞둔 여야는 국민들에게 공천권을 둘려주느니, 국민요구에 부응하느니 하며 국민들로서는 듣도보도 못한 기상천외하고 복잡한 방정식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내는 모두 제 밥그릇을 얼마나 더 챙기느냐로 귀착되고 있다. 이것도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1977년 발간된 한완상의 `지식인과 허위의식`은 스스로를 지식인이라 자처하거나 사회적으로 지식인 대접을 받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거짓 지식인이라고 규정한다.

지식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으나 지식이 가진 역사적·사회적 맥락에는 철저히 무관심한 부류, 부조리한 사회 체제에 편승해 학문을 팔아 돈과 권세를 좇는 부류,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불이익이 무서워 침묵하고 수수방관하는 유형 등이다. 사회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때 기승을 부리는 이것도 불편한 진실이다.

광복 70년, 뜨거웠던 8월을 보내면서 나는 목욕탕을 수놓은 청년들의 빨랫감, 막힌 변기에서 넘쳐나는 오물을 보면서 희망과 실망을 느낀다. 정치혁신의 노력에 대한 진정성과 함께 밥그릇 싸움의 분노를 공유한다. 하지만 진실과 거짓이 공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불편한 진실`에 대한 판단에서 국민들은 이제 엄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