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나라때의 인문학자 이종오는 후흑학(厚黑學)이란 책을 냈다. “얼굴 두껍고 속 검은 자들이 정권 쟁탈에 승리하더라”란 내용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을 정도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그런 정치속성은 변하지 않더라는 `경험척(經驗尺)`이다.

새정연 혁신위가 국회의원 수를 69명 더 늘리자 한다. 299명이던 의원수를 1명 늘려 300명으로 할 때도 국민은 분노했다. 안철수 의원이 200명으로 하자 했을 때 그의 지지도는 충천했는데, 오히려 1명 더 늘리자 국민들은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정말 얼굴 두껍고 속 검구나”했다. 69명 더 늘릴 이유는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전국을 6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인구비례로 의석수(지역구+비례대표)를 정한 뒤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해야 영남당 호남당 같은 지역정당이 사라진다는 논리다.

지금 지역정당 구조는 깨지는 중이다. 정치인들이 만들어놓은 지역감정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국민들이 “이것은 잘못됐다”는 자각을 하면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을 호남이 당선시켰다. 법으로 강제하는 것보다 `국민의 자각과 시간`에 맡기는 것이 백번 낫다. 일부 정치학자들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찬성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은 “국회의원 수 늘리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국민정서가 최우선이라 생각할 것이다.

국회의원 한 명에 들어가는 국민혈세가 얼마냐? 억대의 세비에 사무실 운영비, 보좌관 비서관 월급에 각종 수당까지, 하는 일 없이 싸움만 하면서 국민혈세 더 쓸 일만 만들겠다? 심지어 일부 국민들은 “국회를 없애버리면 속이 시원하겠다”고 말한다. 밤낮 `의혹`이나 제기하면서 허송세월하고, 행정력이나 낭비하고, 사사건건 대립하고 발목잡다가 `국회의원 주머니 채우는 일`에는 여야가 신통하게 잘 합의하는 이런 국회가 나라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히틀러가 인종청소를 한 것은 잘못이지만 국회를 무력화시켜 정책을 일사천리로 추진해나간 것은 잘 했다”는 말도 나온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더라도 세비를 깎아 총예산을 동결하면 된다는 꼬리표도 달았는데, 이것이야 말로 허황한 논리다. 국회의원들이 제 수입 깎이는 일을 용인할 듯한가? 천만의 말씀이다.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슬금슬금 다시 올릴 것이다. 법을 만드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무슨 법인들 못 만들겠는가.

또 인구수와 의원수 비교에서 한국은 OECD국가중 4번째로 의원수가 적다고 하는데, 문제는 `의원수`보다 `의원 질`이다. 거수기 노릇이나 하면서 시정잡배 수준의 막말이나 내놓는 의원들이 아닌가. 천하 없는 이유를 내세우더라도 국회의원 수를 늘릴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