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대학생 130명에게 6·25동란에 대해 물었더니 평균점수가 100점 만점에 60.4점이었다. 전쟁 발발 연도를 1945년(해방) 혹은 1953년(휴전협정)으로 잘못 아는 학생이 적지 않고,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사람 이름을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대답한 사람도 있었다. 1950년 중국군의 개입으로 38선 이남으로 대대적인 철수를 했던 사건에 대해 1·4후퇴라고 바로 맞춘 비율은 43%밖에 되지 않았고, `인해전술``낙동강 방어선``백마고지 전투`라고 말한 사람이 많았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0000”란 노래에 들어갈 말은?”이란 질문에 압록강 두만강 부산 등으로 대답한 사람이 70%가량 됐다.

과거에는 초등학교, 중·고교 내내 국정 한국사를 필수로 배웠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고교에서 선택과목이다. 6·25를 간단히 기술한 교과서도 있고, 심지어 북침(北侵)이라고 가르치는 교사도 있다. “남침이냐, 북침이냐”란 물음에 북침이라고 대답한 비율이 40%를 넘는다. 한문을 배우지 않는 학생들은 북침과 남침의 개념조차 혼란스러워한다. 북침을 `북이 남을 침입한 것`으로 이해하는 학생들도 있다.

`연평해전`을 모르는 국민이 많다. 2002년 월드컵때 우리는 축구에 완전히 매몰돼 있었다. `히딩크신드름` `기적의 4강 진출` 등으로 축구에 열광하고 있을때 서해에서는 두 차례 북한의 침공이 있었지만, 그것은 국민의 관심 밖이었다. 북한해군 `등산곶 684호`가 한국군 `침수리 357호`를 기습공격해 30분간 교전이 벌어졌고, 피아간 상당한 희생자를 냈었다. 영화 `연평해전`은 제작기간이 무려 7년이나 걸렸다. 제작비가 모자라 크라우드펀딩을 모으기도 했다. 7천명에 이르는 펀딩 후원자, 각계각층의 성금 등이 모아져서 제작된 `연평해전`이다.

러시아, 중국, 미국 등에 보관된 비밀해제 문서에 의해 북한의 남침이 증명됐음에도 북한과 종북들은 여전히 북침이라 주장한다. 연평해전에 대해서도 북은 “괴뢰극우 보수분자들이 저들이 군사적 도발로 초래된 서해 무장충돌사건을 심히 왜곡날조한 불순반동영화, 반공화국 모략 영화를 만들었다”고 뒤집어씌우기를 한다. 그러나 영화 `연평해전`은 박스오피스에서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흥행몰이를 한다. 관객들은 “월드컵에 정신이 팔려 연평해전을 몰랐던 우리가 원망스럽다”며 후회한다.

근현대사를 두고 이념갈등이 심한데, 교육의 미비를 영화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라, 감동하면서 역사를 배울 기회가 된다. “전쟁영화는 대부분 성공한다”는 말도 있다. 역사적 진실을 바로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한반도 전쟁영화는 더 많이 제작되고 더 많이 관람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