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작가·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 연구위원
▲ 이대환 작가·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22일 서울과 도쿄에서 한일(韓日) 양국 정상이 교차 참석한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그 장면을 보면서 문득 나는 10년 전 이맘때 박태준 선생(당시 포스코 명예회장)이 40주년 국제학술대회에서 내놓았던 기조연설의 몇 문장을 떠올렸다. 벌써 10년이 지난 현재에나 앞으로 100년이 더 흐른 미래에도 그것은 두 나라의 지도자와 시민이 꼭 기억해야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한일수교의 출발선에는 극단적 냉전체제의 국제역학관계와 두 나라의 경제발전이란 공통분모가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한국을 가리켜 `일의대수(一衣帶水)`라 부르곤 합니다. 대한해협(현해탄)을 한 줄기 띠에 비유한 말입니다. 한국은 일본을 가리켜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 부릅니다. 가깝다는 것은 지리적 거리이고, 멀다는 것은 민족감정을 반영합니다.

한국, 일본, 중국에 `親`자가 있습니다. 친교, 친숙, 친구 등 한국인은`親`을`사이좋다`는 뜻으로 씁니다. 매우 기분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親`을 매우 기분 나쁜 뜻으로 알아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친일`이란 말입니다. `친일`의 `親`은 묘하게도 `반민족적으로 부역하다`라고 변해 버립니다. 이것은 국교정상화 40주년 한일관계에 내재된 문제의 본질에 대한 상징입니다. 한국인의 언어정서에서 `親日`의 `親`이 `사이좋다`는 본디의 뜻을 회복할 때, 비로소 한일수교는 `절친한 친구관계`로 완성될 것입니다.

언제쯤 한국인이 `친일`의 `親`을 `친구`의 `親`처럼`사이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언제쯤 한국인이 일본을`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그날을 앞당길 일차적 관건은 과거의 진실을 직시하는 일본의 역사인식과 역사교육에 달려 있습니다.

고대의 한국은 일본에 문명을 전수했습니다. 4세기말과 5세기초에 걸쳐 백제의 왕인 박사가 창시한 `아스카(飛鳥)문화`부터 떠오릅니다만, 포항제철소의 영일만 마을에는`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시대 `연오랑 세오녀`라는 민중설화가 전해옵니다. 연오랑 세오녀 부부가 일본에`빛`을 건네주고 왕과 왕비로 추대되었다는 줄거리인데, `빛`은 곧 문명을 뜻하는 것으로, 일본에 문명을 전수한 신라인의 자부심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그 고대로부터 천수백 년 지난 1973년, 영일만에는 일본이 협력해준 용광로의 `빛`이 탄생했습니다. 영일만 배경의 이러한 `빛의 상관관계`는 한일관계의 미래를 비추는 등불로 삼아도 좋을 것입니다.

일본은 문화의 다원주의가 성숙된 나라입니다. 한국에 극우와 극좌가 있듯, 일본도 당연히 그러합니다. 문제는 극단적 주장에 대한 일본정부의 대응방식으로, 주변국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신뢰가 없으면 내일의 친구는 없습니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 관해 독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세계 지도자`를 설계하는 일본의 `때늦은 용기`라고 권유하는 바입니다.

이제는 한국도 새로운 시각이 필요합니다. 한일국교정상화 40년, 이 세월은 한국사에서 경제와 민주주의를 성공시킨 특별한 시대로 기록될 것입니다. 여기서 먼 미래를 내다보는 한국인은 한일관계를 재조명할 때 국교정상화 `이전`과 `이후`를 동시에 살펴야 합니다. 40년 전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에는 한국인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요소도 개입됐지만, 그 `이후`의 한국은 일본과 전면적으로 교류하는 가운데 근대화에 더 힘찬 박차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한국은 한일관계에서 국교정상화 `이전`과 `이후`의 전체를 통찰하는 가운데 동북아의 미래를 구상하고 전망해야 합니다. 이것은 불과 한 세대 만에 경제도 민주주의도 수준 높게 쟁취한 역동적인 한국의 `때맞은 용기`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밝혀주는 상징으로서 포항 영일만, 일본의 `때늦은 용기`와 한국의 `때맞은 용기`에 대한 박태준 선생의 당부를 한국과 일본의 `깨어있는 시민`이 함께 되새겨보는 아침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