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도 현

풀숲에 호박이 눌러앉아 살다 간 자리같이

그 자리에 둥그렇게 모여든 물기같이

거기에다 제 얼굴을 가만히 대보는

낮달과도 같이

고요한 적막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시안이 놀랍다. 이 편안하고 대수롭지 않는 풍경에 잡스러운 소음이 섞여들지 못하고, 쓸데없는 상상이나 덧붙임도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시인은 호박이 풀숲에 눌러앉은 그 자체만의 사실과 풍경에만 주목하고 있다. 모든 적막은 대상 그 자체가 오롯이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사람도 자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