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윤 학

반초도 안 되는 순간

어떤 벽에 뚫린 구멍은

벌어졌다 오므라들었네

그녀가 돌아올 때마다

그녀가 돌아갈 때마다

그에게는 구멍이 하나

안에서 밖으로 뚫어졌네

이 세상이 쉬 망하지 않는 이유

한없이 시간이 더디기 때문이라네

참으로 재미난 발상의 시가 아닐 수 없다. 사랑은 반초도 안되는 순간 구멍을 뚫을 정도로 빠르고 순간적이지만 세상사는 한없이 더디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세속적 시간의 느림과 짧고도 강렬한 사랑의 순간들이 만들어 내는 구멍을 대비시키는 시적 발상이 재밌다. 사랑이란 느리고 권태롭지 않고 너무도 강렬하여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순간 순간 치명적인 구멍을 뚫어놓는다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