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진 은

응달, 고개 숙인 것들 사이로

햇살의 회초리 바람의 종아릴 칠 때

흙살 촉촉이 밟으며

졸음을 코에까지 건

연둣빛 어린 물기둥들이 솟아오른다

들리지 않는 환한 소리가

사물의 실핏줄 속

푸르고도 여린 문(門)들을 연다

가벼워지는 법 생각하며 가로수들이

발꿈칠 지그시 들어

햇살 쪽으로 걸음 옮겨본다

재재거리며

꺼멓게 죽은 지난 계절의 대궁일 흔드는

시궁쥐 같은 햇살,

반쯤 내려왔던 하늘 한 자락이

속죄처럼

슬쩍 다시 올라간다

연둣빛 어린 물기둥들이 솟아오른다고 표현한 시인의 봄에 대한 인상적인 표현이 선명하게 와 닿는 생명감이 넘치는 봄 예찬의 시다. 사물의 실핏줄 마다 봄의 기운이 치고 오를 것 같은 느낌은 겨울 내내 꼭꼭 닫혔던 우주의 모든 문, 자연과 인간 세상의 모든 문들이 활짝 열림에 가 닿는다. 차갑고 무거웠던 시간들이 가벼워지는 봄날이다. 희망 크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