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 기

나는 논과 밭을 경전으로 삼았다

물소리 바람소리 다 말라버린 가뭄을 건너

슬픈 남루를 액자에 담아 거는 극지의 노을까지

농사짓는 일이 명부전 같다

나는 그것이 분하다

탁란을 마친 뻐꾸기는 어딜 갔는가

파란만장의 책, 경(經)아,

사무치면 고요에 닿는가

나는 이제 나의 경전을 얼음 감옥에 가두

어야겠다

신에게 들키지 않을

꽃 한 송이 불끈 피우겠다

정직하게, 하늘의 뜻에 따라 씨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농부의 업은 신성한 것이다. 쉰이 넘도록 농사를 지으며 시를 써온 시인은 논과 밭을 그의 경전이라 일컬을 정도로 천리대로 무욕의 자세로 농사를 지어오고 있다. 이 시에 말하듯이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부화를 해서 날아가버리는 뻐꾸기에 빗대어 외국산 농산물이 밀려와서 우리의 농촌이 피폐해지고 망가지는 현실 속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는 우리네 농부들의 눈물겨운 삶을 느낄 수 있는 시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