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백 겸

아침에 마신 커피가 어제의 쓰디쓴 기억을 달래고

저녁에 마신 와인이 오늘의 깊어진 상처를 소독하고

한밤중에 마신 맹물이 내일의 불확실한 갈증을 미리 예비하는

내 하루가 강물처럼 흘러갔다

죽음이 불만인 삶처럼

아폴로를 떠나보낸 다이아나의 가슴처럼

재회를 약속하지 못한 시간들의 불타는 발자국처럼

내 인생이 흘러갔다

꽃은 떨어지고 물은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은 어길 수 없는 자연의 진리이고 자연스러움이다. 쉰에 이른 시인이 자신이 걸어온 길을 회억하면서 허망함을 느끼고 있다. 아침과 저녁과 어제, 오늘이라는 시간 개념은 모두 강물과 함께 하는 순간적인 것에 불과하다. 영원이라는 무한의 시간 앞에서 겸허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가슴이 젖어있다. 어디 지은이의 가슴 뿐이겠는가.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과 짙붉게 떨어지는 꽃잎을 본다. 뜨겁고 치열했던 순간들도 허망하게 스러져가는 것, 그게 인생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