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 서울본부장

정치인들은 코너에 몰렸을 때 국면전환을 꾀하거나, 신념을 고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말을 왕왕 쓴다. 우리 정치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이고, 전·현직 유력 정치인들 치고 이 표현을 동원하지 않은 인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빈번했다. 민주화시대가 도래한 이후 이 언급은 더욱 잦았다. 다들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고 같은 말을 하는데, 정작 가는 길은 사뭇 다르니 정말 헷갈린다. 왜 그럴까.

현대정치에 있어서 `국민`이라는 용어만큼 복잡한 해석을 요하는 정치적 췌사(贅辭)는 없을 것이다. 어떤 때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영악한 정치인들은 `나를 지지하는 국민`이라고 써야 될 말을 그냥 `국민`이라고 쓴다. 듣는 이들로 하여금 마치 절대다수의 여론이 그런 것처럼 헛갈리게 하기 위한 꼼수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말은 참으로 애매한 포퓰리즘 언어다.

무려 31년 동안 싱가포르를 철권통치로 다스렸던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났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전 세계의 많은 나라 수반들이 장례식에 참석했고, 싱가포르 국민의 4분의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조문했다고 하니, 가히 그 명망을 가늠할 만하다. 물론 리콴유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판자들은 그의 업적에 `싱가포르가 소규모의 도시국가이기 때에 그런 정치가 성공했으리라`는 가설을 덧씌우곤 한다.

리콴유의 통치이념은 박정희 대통령의 그것과 흡사하다. 특히 `경제부흥`에 통치행위의 모든 초점을 맞추고,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인권신장 등 나머지 가치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 대목은 분리하기 어려울 만큼 유사성을 갖는다. 리콴유의 강력한 리더십은 `검소``청렴``겸손` 같은 자기관리 이미지에서 나온다. 그는 마지막 유언조차 인근 주민들의 번거로움을 우려해 “내가 세상을 떠나면 살던 집을 헐어 버려라”고 남겼다.

리콴유가 만들어낸 `싱가포르 모델`은 중국이 공을 들여 배운 것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새마을 운동`이 아직까지 저개발국가에서 연구하는 모델이 되고 있다는 점과도 많이 닮았다. 1979년 최측근에게 시해당한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리콴유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싱가포르 국민들을 철권통치로 장악하여 세계 최고 반열의 선진국을 만들어놓고, 1990년 은퇴하여 천수를 누렸다.

세계적 정치위인(政治偉人) 박정희와 리콴유가 남기고 간 유산은 무엇일까. 한때 아시아 4마리의 용이라 비유되던 4국 중 두 나라를 통치했던 그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민 분열과 해태(懈怠)를 철두철미 틀어막고, 굶주림을 해결하면서 미래를 그려냈다는 사실이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철권통치가 불러올 비난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역사를 보고 비전을 만들었고, 투철하게 밀어붙였다.

아버지와 유사한 정치적 평가를 받고 있는 리콴유 상가에 다녀온 박근혜 대통령의 조문은 매우 특별했을 것 같다. 박 대통령은 리콴유의 서거 소식을 듣고 발 빠르게 `직접조문`을 결정한 뒤 싱가포르로 날아가 조문록에 `우리시대의 기념비적인 지도자였다. 그의 이름은 세계사의 페이지에 각인돼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적었다.

박정희와 리콴유는 난세를 일궈 나라와 국민의 눈부신 미래를 창출해낸 걸출한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국민만 바라보고 간다`는 얄팍한 포퓰리즘을 탐닉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역사를 통찰하는 예지와, 시대를 꿰뚫어본 눈이 있었다. 그들의 치열한 삶과 죽음은, 모름지기 나라의 지도자들이라면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원대한 청사진을 들고 꿋꿋이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