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 경북대 명예 교수, 정치학

중국의 시장경제가 중국 개혁 개방의 촉진제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사회주의적 통제 경제의 틀을 벗어던지고,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socialist marketing )로 진입하였다. 오늘의 중국이 G2 국가로 급부상한 배경도 중국식 사회주의가 시장 경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북한 경제는 식량뿐 아니라 에너지, 외환위기라는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 원인을 북한 당국은 `미 제국주의` 압박 때문이라고 항변하지만 북한식 사회주의, 계획 경제라는 미명하의 통제 경제 정책를 버리지 못한 결과이다. 개인 소유가 부정된 집단 농장에서 생산성 향상은 어렵고, 공급이 수요를 여전히 따르지 못하는 곳에서 주민들의 소유 욕구는 충족될 수 없다. 북한에서 당과 국가의 경제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지속되는 한 본격적인 시장경제의 확산은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은 이러한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2002년 7·1경제 관리개선 조치를 단행하였다. 이것이 2003년부터 북한의 장마당이나 농민시장을 종합시장으로 확대·개편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에는 이미 평양 40여 개, 시군별로 1~2개씩 약 300개의 종합시장 조성되었다. 북한 개별 주민, 국영 기업소, 협동 단체도 시장에 참여하게 되었다.

북한 당국은 최근 원부자재 시장을 개설하여 일정 비율의 생산물을 시장에 납품하도록 시장의 범위를 확대시키고 있다. 북한의 종합시장에는 농산물이나 식료품 외의 중국산 공산품이 대량 거래되고, 일부 제한 품목을 제외한 소비재, 원자재, 생산재 등의 거래가 가능하다. 그로인해 북한 시장에서 북한 개인수공업자의 시장을 겨냥한 생산 활동은 중국 제품에 밀려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한국의 초코파이, 담배, CD 등이 암거래된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심지어 시장에는 가라오케, 당구장, 이발소, 음식점 등 서비스업 등장하여 다소간 활기를 찾고 있다.

2005년 6월부터 평양에는 조·중 평양건축 장식재료 시장, 보통강 수입물자 교류시장 등이 도매 시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에 반해 자본주의식 화폐·금융시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에서 아직도 화폐·금융을 담당할 상업은행이 없기 때문이며, 일부 대부업 형태로 개인 불법 사금융이 확산되어 성행한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에서 노동시장은 존재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기업에 대한 노동력 수급은 시장기구와는 무관하게 국가가 결정하고 있지만 임금의 차등 지급 등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초보적 형태이지만 북한의 시장 경제의 확산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 경제의 확산이 북한 주민들의 정보 교류를 활성화시키고 주민들의 개혁· 개방 열망을 가속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당국이 주민들이 시장을 통한 이득의 논리를 터득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북한 사회에서 시장의 확대가 주민들의 빈부 격차를 초래하고 이에 따른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만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 주변에는 북한의 배고픈 꽃제비들이 몰려다닌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북한 노동당이나 내각이 시장의 확산을 강력히 규제했다가 때로는 완화 조치를 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북한 땅에서 시장 확대 경향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배급체제가 사실상 붕괴된 북한에서 물자의 수요와 공급을 위해 시장의 확산을 막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열악한 경제의 속성상 공급은 항상 수요를 따르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금 통화량의 급격한 증가로 가격의 상승 등 북한식 인플레이션은 불을 본 듯이 뻔하다. 시장을 방치하면 북한 체제의 균열 위험이 따르고, 이것을 엄격히 규제하면 인민들의 삶은 더욱 고달프다. 이것이 북한식 자본주의 실험인 시장 확산이 가진 이중적 딜레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