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창 환
마을 중심에 2백 년은 실히 묵은 은행나무가
온 마을에 노오란 빛 흩뿌리며 곧추서 있다
그 아래 여대기로 아이를 업은 젊은 아낙이
쌕쌕 자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바람이 지나다 심술을 부려
등 뒤로 은행잎을 수북수북 뿌려대는데
선 고운 어깨에도 머리 위에도 흐르르 쌓인다
나무도 아낙도 아무 걱정이 없는 듯
제각각 제 일만 보고 섰는데
(…)
아이는 꿈속에서 엄마가 읽어준 이야기 듣고
한잠을 더 자고 일어나 뛰놀다가
10년, 20년 지난 어느 날, 문득
세상 어딘가에서 엄마의 음성 듣고 벌떡 일어나
벼락같이 이 나무 아래로 달려오리라
노오란 은행잎, 아프도록 실컷 맞아보려고
은행나무가 노오란 이파리들을 날리고 선 시골 마을의 한 풍경 속에서 시인은 시간의 깊이와 그만큼의 시간을 진지하게 살아온 한 생을 들추고 있다. 은행나무 아래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던 젊은 여인의 모습도, 오랜 시간 뒤 나무와 여인에게도 돌아온 성숙한 아이의 모습들이 세월의 깊은 그윽한 결과 시간의 깊은 울림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