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 목

바람이 불었다

밤새 산비알을 쓸던 바람은 날이 밝자 가뭇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바람은 덧없다 들어앉을 몸을 얻으려고 산죽을 바닥까지 휘어놓고도

들어앉는 삶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 깊은 잠 속의 흐느낌처럼 소리로만

육체를 드러낸다

당신은 시김새 없이도 한 생을 이루었다 저 바람처럼 어쩌면 몸 없이

회오리치는 것이 생일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소리로 인해 일어서고

드높아진 영마루 같다

바람이 누웠다 소리로 와서 소리 없이 사라질 줄 아는

높새바람이었다

들어앉을 몸을 얻으려고 산죽을 바닥까지 휘어놓고도, 들어앉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바람, 오로지 소리로만 육체를 드러내는 바람, 시김새 없이도 한 생을 이루는 바람, 소리로 와서 소리없이 사라지는 높새바람, 그런 바람 같은 존재를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깊은 시안을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