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도 현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醫員)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 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으로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어느 늦은 가을날 시인의 하루를 쓰고 있다. 생활의 깊숙이 파고드는 가을의 부분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결코 그냥 스치지 않는 섬세한 시인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가을 꽃이며 가을 벌레며, 듬성하게 열매를 달고 선 감나무며, 추녀 끝으로 날아가는 안행(雁行)이며, 혼자 먹는 차가운 가을 밥이며… 이런 것들에 하나 하나 눈길과 마음을 쏟아넣은 하루를 섬세한 시안과 시심으로 써 내리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