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 서울본부장

신라 3대 왕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은 을소(乙素)라는 인재를 대신으로 등용해 나라의 기초를 다진 업적으로 유명하다. 그가 왕좌에 오른 지 5년째 되던 해에 `나라를 돌아보다가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가는 노파를 보고는 반성하여 관리들을 시켜 홀아비와 과부·고아·자식 없는 노인 등을 보살피고 부양하게 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주목거리다. 온후한 통치에 감복한 이웃나라 백성들이 몰려들어 `도솔가(兜率歌)`를 지어 불렀다고 하니, 유리왕이야말로 수탈만 무성했던 고대 삼국시대에 진심한 `민생정치`로 강력한 천년 왕국의 힘을 일궈낸 위대한 통치자가 아니었을까.

지루한 세월호특별법 갈등 와중에 대한민국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이 혼미의 수렁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모습은 딱하다. 물밑 당권쟁탈전의 역학에 휘둘린 지도층은 갈짓자 행보를 모면하지 못한 채 비틀거리고, 당의 명운을 틀어쥔 강경파들은 해묵은 선명투쟁 구호를 내려놓지 않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경제 활성화`와 `민생`을 화두로 들고 삶의 현장을 누비기 시작한 것은 썰물 지듯 민심이 이반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의 급소를 찌르는 뼈아픈 일격이다. 세월호 참극의 길고 깊은 애통 속에서 긴긴날 먹구름 아래 살아온 국민들은 시들어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천지에 드리운 납덩이처럼 무거운 비감을 이제쯤은 걷어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깊어지고 있다.

예로부터 마을에 초상이 나면 이웃들은 `상주들마저 정신을 놓으면 어쩔 것인가`하는 염려부터 앞세웠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위로는 결코 사자(死者)에 대한 망발이나 무례가 아니다. 불행하게 죽음을 맞이한 희생자들의 해원(解寃)을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은 남은 사람들의 멀쩡한 정신과 차가운 이성이다.

세월호특별법을 놓고 두 차례나 합의에 이른 것을 보면,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그런 합리적 판단력을 아주 놓친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을 지렛대로 당내 권력지도 재편의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복잡한 내심들이 교차되면서 씨도 안 먹힐 장외투쟁 깃발을 들고 뻘밭을 구르고 있는 꼴이다. 야권인사들의 푸념을 종합해보면 `집단사고(集團思考)`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오작동 현상이 빚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작금 새정치연합의 내부에서 현대 의사결정 메커니즘의 백미인 `집단지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게 맞다면, 이른바 `집단극화(Group Polarization)`의 부작용이 다분히 의심된다. 의원총회를 비롯한 집단 의사결정의 장이 벌어지기만 하면 어느 새 극단 강경파들의 설익은 논리가 판을 치고, 여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말문을 열지 못하는 기괴한 분위기가 형성되곤 하는 것 같다. 뜨거운 흥분으로 벼린, 서슬 퍼런 칼춤 앞에서 목을 내밀고 진심을 드러내기란 결코 쉽지 않으리라.

그렇다고 새누리당의 앞날이 마냥 탄탄대로일 것 같지는 않다. 여당이라고 민심 퇴짜의 혼돈에 휘말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집단극화(集團極化)`의 비극은 `오만방자`의 우매 안에서 더 쉽게 발현되기 때문이다. 그런 짐작 끝에 문득, 7.30재보선 기간에 응급 가동됐던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새바위)`가 떠오른다. 새누리당이 진정으로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확보하려면 `새바위`를 기억하고 기대해온 민심으로부터 멀어져서는 안 된다.

`새바위`가 당 개혁을 위해 제기해온 이슈들과 혁신안에 대해 지도부는 성실하게 실천해 보여야 할 의무가 있다. `민생정치` 하나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 국민들이 샛눈 뜨고 바라보고 있는 `혁신을 향한 진정성` 여부야말로 민심을 가르는 가장 냉혹한 잣대가 될 것이다. 정치는 변화무쌍한 생물임을 잊지 말이야 한다. 게임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