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여러 해 전 연변 과학 기술 대학을 설립한 김진경 총장을 우리 대학의 강연회에서 만난 적이 있다. 몹시 건강해 보였으며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그의 첫 인상은 소탈하고 집념이 매우 강해 보였다. 지난해 중국 연길 방문 시 과기대도 둘러 본적이 있다. 경남 의령 출신 김진경 총장은 천신만고 끝에 연길에 이어 평양에 과학 기술대학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특히 북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가 계속되고, 한미 합동 군사 훈련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김총장이 남북을 오갈 수 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평양 과학 기술 대학을 잠시 소개한다. 김 총장은 1993년 연길의 연변 과기대를 설립한 이후 2010년 평양시 남쪽 낙랑구역에 100만 ㎡부지에 설립하였다. 남쪽의 통일 협력기금 10억원, 기독 계 모금 440억원 총 550억원으로 건립된 이 대학은 입학 정원 100명이며 학비와 식비는 무료이며, 모두 기숙사 생활을 의무화하고 있다. 연 70억원에 이르는 대학 운영비는 주로 남한과 해외의 후원금에 의존하고 있다. 평양의 우수한 학생뿐 아니라 북한 전역의 수재들이 모여 들고 있으며 소수의 우수한 학생은 외국도 하고 있다. 이 대학의 전공 학과는 정보 통신 학, 산업 경영학, 농업 식품공학과 등 6개 과가 있다. 특히 자본주의 비즈니스강의가 개설되어 있고 외국인 교수들이 영어 강의를 하고 있다. 학내에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북한 유일의 대학이다.

이 대학 설립자 김진경 총장(79)은 6·25 전쟁 시에는 학도병으로 참전하였으며 해외에서 사업을 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그는 평양 명예 시민증 1호를 취득하고 중국의 공민증까지 소지하고 있다. 그는 한동안 북한 당국으로 부터도 미제의 스파이로 오해 받았다. 실제로 그는 1998년 체제 전복 음모죄로 구속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미국의 노력으로 42일 만에 풀려났다. 그는 남한에서도 그의 교육 사업이 북한 당국의 환심을 사려는 이중 스파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는 김일성과 김정일 직접 만나 자신이 공산주의자도 자본주의자도 아닌 북한을 도우려는 `사랑주의자(loveist)`임을 설득하여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남북관계가 이토록 경색되어 있어도 평양과 서울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분단 상황의 유일한 자유인이고 통일 인이다.

김 총장은 자신의 대북 교육 사업의 추진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먼저 그는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이 지속되어야 남북이 진정으로 화해의 길로 나아 갈수 있다는 것이다. 그 길이 그의 종교인으로서의 사명임을 주장하면서 `강도를 만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였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의 대북 신뢰 프로세스도 현 상태로서는 임기 내 하나도 실천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남북의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정권 교체 시 마다 바뀌는 대북 정책을 일관 성 있는 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그는 남한의 대북 5·24 조치는 급히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서울과 평양에 남북의 대표부를 상주 시켜 남북대화의 통로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언뜻 남한의 진보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듯 보이지만 남북의 교류 협력, 화해의 필요성을 강조하기에 우리 정부가 새겨들어야할 대목이 많다.

김진경 총장의 평양 과기대 설립과 운영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협력 사업이다. 민족 통일의 장래를 위해서 선견지명이 있는 교육 사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사업은 종교적 신념과 소명이 아니고는 도저히 실천하기 힘든 사업이다. 그는 과거 문익환 목사나 문 규현 신부의 방북처럼 이념적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조용히 대학 교육이라는 장기적 사업구상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김 총장의 평양과기대 설립이라는 교육 사업을 우리의 장기적인 통일 이정표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